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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중견기업] 해외시장 도전하는 계룡건설 지방 건설사 한계를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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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계룡건설 이인구 명예회장(당시 사장)은 1992년 출마한 국회의원 낙선도 가슴 아팠지만 그보다는 "목숨 걸고 키워온 회사를 '정치 바람'에 다 망가뜨렸다"는 자책감에 더 괴로웠다. 이를 악물고 회사를 다시 1위로 올려놓는 일에 매달렸다.

4년 만에 김종필 당시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함께 신당을 창당, 국회에 재입성했지만 '정치 외도'로 또 회사에 누를 끼칠 수는 없었다. '이인구 없이 굴러가는 회사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투명경영이 해법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찾지도, 팔지도 말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증시 상장과 무차입 경영을 1년 내 이루라고 주문하고 96년 서울로 떠났다.

◆건설은 내 운명=6.25 학도병 입대 후 미 공병학교 유학으로 건설과 인연을 맺은 이 회장은 70년 대전서 건설회사를 열었다. 연금 대신 받은 200만 원에 집을 담보로 잡혀 돈을 마련했다. 개인집 3층에다 사무실을 차렸다. 시작은 충남 지역 50개 건설사 중 꼴찌였다.

담합이 성행하던 시절이라 새내기 건설사는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병대 출신으로 서울 세종로 중앙청사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던 그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충남에선 어떤 담합도 인정할 수 없다"고 1등 건설사에 '선전포고'를 했다. 불도저 하나 없이 리어카로 실어나르고 삽으로 콘크리트를 비비던 시절에 중장비 투자에 돈을 쏟아부었다.

위기도 많았다. 창업 초기, 가장 어려웠던 건 자금난이었다. 더 이상 손 벌릴 데가 없을 정도였다. 좌절과 절망으로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노부모와 자식 아홉까지, 딸린 식솔 12명이 눈에 밟혔다. 무조건 동양생명(현 삼성생명)을 찾아갔다. 2년만 보험료를 내면 자살해도 보험금을 내준다는 약속을 받고 5억 원짜리 보험 들었다. "2년만 버티자." 죽기살기로 경영을 했다. 2년 후 회사는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5년 만에 5위, 10년 만에 1위로 급성장했다.

◆작은 이익보다 큰 신뢰가 중요하다=한창 자금난에 허덕이던 72년. 기업들이 끌어 쓴 사채 상환을 동결하는 8.3 긴급조치가 발동됐다.

주변에선 "나라님이 우리를 구해줬다"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 회장 생각은 달랐다. 5억 원대 사채가 있었지만 "아무리 법이라 해도 남의 돈을 떼먹을 수는 없다"며 빚을 모두 갚았다.

이게 대전 '큰손'들에게 소문이 나면서 서로 싼 이자로 돈을 싸들고 오는 바람에 되레 회사가 자금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업종 특성상 사업 보증을 많이 섰던 건설사들은 연쇄 부도에 몰렸다. 계룡건설도 무사할 수만은 없었다. 보증 채무는 물론 남의 공사에 보증을 선 것도 손해 볼 게 뻔하지만 공사를 마쳐야 했다. 그는 사원 가족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감원 없이 1원이라도 흑자가 나면 600%의 보너스 주겠다"고 약속했다. 직원들은 내 회사처럼 일했고 결과는 46억7000만 원이라는 엄청난 순익으로 돌아왔다. 이 회장은 물론 약속을 지켰다.

◆불가능은 없다=창업할 땐 "세상물정 모르는 군인이 몇 달이나 버티는지 보자"는 비아냥을 들었다. 79년 60회 대전 전국체전 10개월을 앞두고 시공사 부도로 기초공사도 못 끝낸 대전 공설운동장을 단독으로 짓겠다고 나섰을 땐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느냐"는 막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 회장에겐 불가능은 없었다. 이 회장은 또 한번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바로 해외진출이다. 규모는 작지만 곧 착공 예정인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하바롭스크 주상복합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방 건설사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대전=안혜리 기자

이 회사를 말한다

충청권에 사업 편중
주가 평가 못받아

대전.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계룡건설은 시공능력 평가순위 22위의 중견 건설업체다. 1996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이래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최근 6년간 매출액은 연평균 13.6% 증가했고, 시공능력 평가순위도 59위에서 22위로 수직상승했다. 지역 관급공사에서의 높은 수주 경쟁력을 바탕으로 공공토목과 건축분야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왔고, 연고 지역에서의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를 통해 주택사업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이뤄낸 결과다.

다만 사업 포트폴리오가 연고지역인 대전.충청권에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주가는 비슷한 규모의 중견 건설업체에 비해 저평가됐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최근엔 대형 건설사의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형태로 사업 권역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2007년 착공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은 오히려 지역 연고가 장점으로 부각돼 더욱 많은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등 계룡건설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전망이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업계 최고 수준의 자기자본이익률(과거 6년 평균 20.3%)과 뛰어난 재무안정성 (부채비율 75.8%), 높은 영업 이익률 등 탄탄한 재무구조와 높은 수익성은 이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외국계 매수세가 계속 유입되며 외국인 지분율이 40%에 육박한 것도 이러한 안정성과 향후 성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분석되고 있다.

강태호 대한투자증권 연구원

우리 회사를 말한다

러시아·중동지역
대규모 계약 눈앞

주택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특히 브랜드 가치가 높은 대형업체로 수주가 몰리면서 건설시장이 양극화하는 바람에 지방 건설사는 설 자리가 더 없어졌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바로 해외 진출이다.

연내 착공 예정인 러시아 하바롭스크 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중동지역에도 대규모 공사 계약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모하다고도 하고 또 규모가 작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충분히 검토했다. 시계가 흐린 국내 건설업 전망으로 볼 때 여력을 해외로 돌리는 게 맞다고 판단한다. 후계 체제를 갖추기 위해 국내 경영은 많이 손을 뗐지만 해외는 직접 챙긴다.

1970년 회사 설립 후 위기는 많았지만 36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이 매년 성장해왔다. 건축대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전국 22위지만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비슷한 수도권 회사에 비해 저평가 받고 있어 아쉽다.

계룡건설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도 5%의 시가배당률을 기록하고 지난해와 2004년에도 액면가 대비 14~16%를 배당하는 등 어느 기업보다 주주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또 종업원과 지역 사회, 그리고 국가에도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계룡의 목표다. 200억 원의 계룡장학재단을 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으로도 회사를 꾸리고 키운 후 남는 돈은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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