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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 반기는 토트넘, 영국 팬은 ‘돈벌이 해외 투어’ 반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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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27면

런던 아이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이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팀 K리그와의 경기에서 후반 프리킥 골을 넣은 해리 케인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이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팀 K리그와의 경기에서 후반 프리킥 골을 넣은 해리 케인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손흥민이 소속된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홋스퍼가 아시아 투어를 위해 한국에 왔다. 토트넘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쿠팡플레이 시리즈 1차전 ‘팀 K리그’와의 경기에서 6대 3으로 이겼으며 16일에는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스페인 라리가의 세비야를 만난다.

유럽 축구 구단의 아시아 투어는 현지 팬들과의 만남의 장이다. 이와 함께 각 구단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TV 중계 판권의 가치를 높이고, 구단의 굿즈(상품) 구매를 끌어낼 수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구단의 인기를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한국 팬들은 구단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해 경기한다는 사실을 큰 반감 없이 인정하는 것 같다. 토트넘의 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 손흥민처럼 유명한 선수가 팀 동료들과 함께 활약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반긴다. 비싼 입장권이나 고가의 구단 굿즈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토트넘 운영 위해 수익 1500억 재투자

구단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건 한국이 수익성 좋은 시장이라는 게 한 가지 이유일지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팬들은 원하는 팀을 볼 수 있다. 이는 모두에게 유리한 윈윈(win-win) 상황이다. 구단이 돈을 벌어 선수들에게 높은 연봉을 지불하면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게 되니 팬들은 구단이 사업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영국의 축구 팬들은 이러한 구단의 상업적 활동에 대해 한국 팬들과는 다른 입장을 보인다. 영국에서 축구는 서민의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다. 역사적으로 골프나 테니스는 상류층이, 축구는 서민들이 즐기는 스포츠였다. 이 때문에 구단이 축구라는 ‘아름다운 경기’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단의 사업적인 면은 혹평을 받곤 한다. 때론 혐오스럽게 비치기까지 한다.

그래서 토트넘의 한국 방문 같은 아시아 투어는 종종 영국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영국 팀이 아시아에서 경기를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팬의 자본을 이용하려는 ‘뻔뻔한 시도’를 위한 여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로는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한국 축구 팬들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3년 전 악명 높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노쇼’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결국 경기 입장권이 잘못 판매되었을 경우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금에 대한 법적 판례를 만들어 냈다.

해외 투어뿐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축구 경기장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구단의 다양한 활동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토트넘이 새 경기장 건설에 한창이던 2017년 구단은 ‘VIP 치즈 룸’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 하프타임 동안 구단 팬클럽에 가입한 특정 팬들에 한해서 특별한 치즈를 즐길 수 있는 ‘VIP 치즈 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호된 비난을 받았고, 결국 계획은 없었던 일이 됐다. 비판이 거세지자 철회한 것으로 보이지만 토트넘은 공식석상에서는 실제로 만들 계획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일은 축구에 스며든 현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재 토트넘 홋스퍼 경기장에 치즈 룸은 없지만 맥주 양조장, 스카이워크는 있다. 약 5만5000원짜리 ‘옥상 투어’ 티켓도 판다. 또 이 경기장의 일부는 일 년에 한두 차례 외에는 항상 비어 있는데 그건 건설 당시 미국 미식축구 리그 NFL과 맺은 계약 때문이다. NFL 경기 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탈의실과 관람석은 이때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분명히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이다. 축구 구단 운영은 큰돈이 드는 사업이다. 손흥민의 연봉만 해도 연간 1000만 파운드(약 155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토트넘 구단의 수많은 선수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토트넘은 2020~2021년 회계연도에 3억6190만 파운드(약 5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9710만 파운드(약 1500억원)의 수익은 모두 구단에 재투자됐다. 당시 구단은 700만 파운드(약 100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평소에 비해 나쁜 실적이다. 코로나19 기간 무관중으로 경기가 진행됐고, NFL 경기가 취소돼 수익을 올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왜 영국 팬들은 구단들의 돈벌이 활동을 좋지 않게 보는 걸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스포츠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영국에서 축구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1800년대 이후 4단계의 시기를 거쳤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 시기는 처음 축구가 생겨난 때다. 정장 입은 남자들이 공터에서 공을 차며 경기 규칙을 막 정하려고 할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축구팀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규정은 없었다. 경기하는 사람들에게 규칙을 알려주는 중앙 조직 없이 경기를 했다.

두 번째 시기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프로 축구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다. 이때 공식적인 전국 대회가 만들어졌다.

세 번째 시기는 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1980년대까지다. 이 시기 축구 경기가 TV로 중계되기 시작했다. 축구 선수들은 유명인이 됐고, 팀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마지막 네 번째 시기는 TV 중계권료가 치솟고 축구 선수에 대한 국제적인 팬덤이 형성된 현재다. 1995년 유럽사법재판소가 노동자들의 유럽 내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면서 축구가 산업으로서 성장했다. 보스만 판결(Bosman Ruling)로 알려진 이 결정은 축구 선수들이 유럽 전역의 팀들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고, 이로 인해 선수들의 몸값이 폭발적으로 올랐다.

이후 축구의 급속한 상업화가 진행됐고, 구단을 지탱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이 각 프로 구단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1995년 이후 유럽 축구 산업으로 성장

손흥민이 15일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팬들에게 사인해 주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이 15일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팬들에게 사인해 주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변화 덕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국 팬들은 구단의 공식 유니폼을 입고 한밤중에 TV를 켜고 80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는 경기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또한 유럽 축구 구단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축구의 상업화가 진행된 1995년 이전부터 축구를 봐 온 수많은 영국 팬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축구의 상업화로 인해 입장권의 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했다. 1980년 아스널 홈경기를 볼 수 있는 입장권 가격은 3파운드(약 5000원)였다. 1990년에는 7.26파운드가 되었고, 2000년에는 21파운드로 뛰었다. 2010년 40.47파운드로 다시 두 배로 뛰었고, 지난 시즌에는 60파운드(약 9만3000원)가 넘었다. 경기당 3파운드를 지불하며 자란 팬에게 현재의 입장권 가격은 그때에 비해 20배 높아진 셈이다.

이렇게 높아진 입장권 가격은 축구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팬들은 구단이 하는 모든 기업 활동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 때문에 구단들은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구단들은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혹시 돈을 벌기 위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다.

나는 한국의 영어신문사에서 일하는 영국인 스포츠 담당 기자로서 종종 프리미어 리그 구단의 담당자들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담당자들은 그들이 기획하는 이벤트가 한국 시장에서 팬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를 물어보곤 한다.

2021년 울버햄튼 원더러스 구단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황희찬 특별 유니폼을 기획했을 때의 일이다. 해당 유니폼은 꽤 인기를 끌었지만 해외 온라인 매체에서는 비판 의견이 나왔다. 울버햄튼 원더러스 구단이 황희찬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이용,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부응해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 구단 담당자는 내게 ‘유니폼이 한국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냐’는 걱정 섞인 질문을 했다. 하지만 내 주변의 한국 팬들은 그저 유니폼이 멋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을 뿐 구단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반응은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한국 팬들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를 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경기장 안에 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반면, 영국 팬들의 반응은 훨씬 다양하다. 사우샘프턴 구단 팬인 샘(34)은 “선수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구단에 많은 돈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모든 상황이 더 단순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 경기를 보러 가고 싶지만 입장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부담돼요. 팬들이 보고 싶을 때 경기를 볼 수 없다면 축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축구의 상업화 자체에 반감을 갖는다. 68세 리버풀 팬인 레오의 말이다. “축구는 사업이 아니라 22명의 선수가 공을 차는 스포츠 경기입니다. 자본, 스폰서 계약, 라이선스 비용이나 그 밖의 어떤 것에 관한 것이 관련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래 축구는 사람들이 여가에 즐기던 스포츠인데 이제 우리는 축구를 수십억 파운드의 산업으로 만들었죠.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번역: 유진실

짐 불리(Jim Bulley)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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