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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즉위한 영국 여왕 기념 공휴일, 6월에 지정 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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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호 29면

런던 아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올해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 영국을 비롯한 15개국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올해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1952년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 영국을 비롯한 15개국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6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나흘을 특별 국가 공휴일로 지정했다. 대부분의 왕실 기념일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연휴도 사람들이 더 좋은 날씨 속에서 휴일을 즐길 수 있도록 실제 즉위한 달인 2월이 아닌 6월 초로 지정됐다. 여왕의 실제 생일은 4월 21일이지만 매년 6월 두 번째 토요일에 기념행사를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즉위 기념일은 주빌리(Jubilee)라고 부른다. 주빌리는 특별한 기념일을 뜻하는데 결혼기념일에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결혼 25주년은 실버 주빌리, 40주년은 루비 주빌리, 50주년은 황금 주빌리다.

올해로 즉위 70년을 맞이한 여왕은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는다. 플래티넘은 주빌리 중에 가장 상위에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역대 영국 군주 가운데 최장수 통치자다. 그다음이 빅토리아 여왕(1837~1901년)이다.

10대 때 정비공 훈련받고 구급차 몰아

즉위 이듬해인 1953년 6월 2일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엘리자베스 2세(왼쪽)와 남편 필립공(2021년 타계). [AFP=연합뉴스]

즉위 이듬해인 1953년 6월 2일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례하는 엘리자베스 2세(왼쪽)와 남편 필립공(2021년 타계). [AF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는 전 세계 현존하는 군주 중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하고 있는 군주이며, 세계 역사상 세 번째 최장수 통치자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오래 통치한 여성 국가 원수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 재임하고 있는 현직 국가 원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2월 6일,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윈스턴 처칠부터 현재 보리스 존슨까지 총 14명의 총리가 그의 밑에서 일했다. 재임 70년 동안 여왕은 모두 32개국의 군주 역할을 해 왔다. 이 중 많은 나라의 정치 체제가 바뀌어서 현재 그는 15개국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을 비롯해 안티구아, 버뮤다, 호주, 벨리즈, 캐나다, 그레나다, 자메이카,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세인트키츠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솔로몬제도, 투발루의 왕이다.

여왕은 즉위 후와 그 이전까지를 포함하여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서나 알고 있는 사건을 직접 겪어 왔다. 10대 시절 그는 정비공 훈련을 받았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구급차를 몰았다. 또한 그는 비틀마니아(영국의 음악 그룹 비틀스의 팬들을 지칭하는 용어)의 시대와 아프리카, 카리브해 국가들이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는 시대를 살았으며 유럽연합(EU)의 시작부터 영국의 EU 탈퇴까지를 지켜봤다. 인터넷의 시작을 경험했고, 수많은 전쟁과 비극을 목도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통치했다. 이 모든 사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과 세계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과 그가 왜 오늘날 그렇게 인기 있는 인물로 남아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영국의 최근 5명 총리는 모두 여왕이 즉위한 후에 태어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현대사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록 일부에서 군주제의 필요성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왔지만, 여왕의 인기는 크게 타격받은 적이 없다.

영국 여왕에 즉위하기 3년 전인 1949년의 엘리자베스 공주. [AP=연합뉴스]

영국 여왕에 즉위하기 3년 전인 1949년의 엘리자베스 공주. [AP=연합뉴스]

여왕은 여전히 인기 있는 유명인사다. 영국 조사기관인 유고브가 올해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영국인의 75%가 여왕을 좋아하는 반면, 9%만이 여왕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91%, X세대의 72%, 밀레니얼 세대의 67%가 여왕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영국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70주년을 맞아 영국 전역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역마다 거리축제가 진행 중이며, 토요일인 4일에는 대형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일요일인 5일 열릴 예정인 퍼레이드는 이번 70주년 기념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BBC는 4일 버킹엄궁에서 열리는 축하 파티를 TV로 중계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는 유명 록밴드 퀸, 가수 다이애나 로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전설적인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등 유명 인사들이 총출동한다. 일요일 퍼레이드에는 전국에서 초청된 어린이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 카니발 행사도 열린다.

하지만 이 축제들이 막을 내리고 나면 아마도 영국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군주제에 관해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여왕이지만 그의 나이는 96세다. 특히 지난해 73년 동안 함께했던 남편 필립공이 사망한 후로는 눈에 띄게 허약하고 슬퍼 보인다.

여왕의 통치가 막바지에 이른 듯하지만 왕위 계승은 여전히 걱정거리다. 왕위 계승자이자 여왕의 장남인 찰스 왕세자의 인기는 여왕의 인기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한다.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만이 찰스 왕세자를 좋아하고,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는 40%로 줄어든다. 찰스 왕세자는 자신의 어머니나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 여동생, 아들, 며느리보다도 인기가 낮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영국인이 여왕을 지지해왔지만, 사실 그들의 지지는 여왕에 대한 것이지 군주제에 대한 건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여왕은 갈등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존재하지만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갈등을 회피하는 인물로 비치기도 한다.

영 전역서 재위 70주년 기념 행사 열려

엘리자베스 2세의 플래티넘 주빌리(즉위 70주년)를 맞아 런던 더몰 에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내걸렸다. 지난 2일부터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의 플래티넘 주빌리(즉위 70주년)를 맞아 런던 더몰 에 영국 국기 유니언잭이 내걸렸다. 지난 2일부터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확실한 건 영국 왕실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 영국 사회와 대립되는 모습을 가진 특권적인 백인 가족이라는 것이다. 여왕은 여왕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인정받았고, 또 많은 사람에게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에 이런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는 그런 호사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왕실에서 여왕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여왕의 직계 가족들은 씁쓸한 이혼과 분쟁 등에 휩싸이며 왕실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과 죽음부터 해리 왕자 부부와 관련된 잡음까지 왕실 내 젊은 왕족들을 둘러싼 스캔들은 끊이지 않았다. .

이런 왕실 내 사건들에 대한 문제는 지난해 앤드루 왕자가 10대 청소년 시절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엄청난 액수의 합의금을 주기로 하고 소송은 막았지만 앤드루 왕자의 군대 직함과 왕실 후원 자격은 박탈됐고, 공적인 임무는 금지됐다.

또 다른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27%는 군주제 폐지를 지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군주제 폐지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떤 주요 정당도 군주제 폐지를 고려한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만약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영국 내 정치적 상황은 꽤 빠르게 바뀔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영국 왕실을 교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을 비롯해 세계 많은 영연방국에서는 약 1200년 동안 군주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왕실을 폐지하려면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 즉, 그동안 항상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었고 군주제의 폐지는 그에 비해 심각하게 고려될 만큼 충분한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왕실이 사라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국가에는 국가 원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여왕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 것이다. 국가 원수는 국민의 직접투표가 아니라 자신이 소속한 정당의 성공 덕분에 대등한 사람 중 1위로 선출된 사람인 총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그러면 영국은 세습이 아닌 임시로 선출된 군주제인 대통령제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군주제 폐지 시 여왕을 최고 통치자로 인정하는 영국 외 다른 14개국에도 문제가 생긴다. 영국이 군주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그것을 따를 이유는 없다. 타 국가들이 군주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왕실은 영국에 집이나 재산을 갖고 있을 것이다. 즉 해당 국가들에게는 그들의 군주가 각자의 나라가 아닌 영국에 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왕실과 왕실의 모든 재산을 캐나다나 자메이카 등 다른 영연방국으로 옮겨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제들은 왜 영국에서 왕실의 개혁이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영국 왕실 문제는 영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이런 문제 말고도 국가가 걱정해야 할 문제는 많다. 하지만 새로운 군주가 왕위에 오르는 날이 오면 이런 의문들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번역: 유진실

짐 불리(Jim Bulley)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는 필자 사정으로 이번 주에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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