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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공세에 입 연 文 …'尹정부 인사들' 콕 찍어 추천한 책 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는 탈북어민. 통일부가 지난 12일 사진 10장을 공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북송을 거부하는 탈북어민. 통일부가 지난 12일 사진 10장을 공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연합뉴스

2019년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정부·여당의 강력한 압박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우회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정학의 힘』은 현 정부 인사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라며 “우리는 한반도의 지정학을 더 이상 덫이 아니라 힘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적었다. 이어 “지정학은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에게 숙명”이라며 “지정학적 상상력과 전략적 사고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시작된 대통령실과 여권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한 공세에도 한 달 가량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간 틈틈이 책 소개를 하거나 아베 전 일본 총리 사망에 조의를 표한 정도였다.

문 전 대통령이 “현 정부 인사에게 권한다”고 특정하며 메시지를 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지난 12일 통일부가 탈북어민 북송 당시 사진을 공개하고, 대통령실이 “반인륜적 범죄행위”라고 몰아붙이자 문 전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반발을 표시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윤석열 정부 인사들에게 책 『지정학의 힘』을 일독할 것을 권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인스타그램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윤석열 정부 인사들에게 책 『지정학의 힘』을 일독할 것을 권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인스타그램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한병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일들을 전부 뒤집는 듯한 행보를 하는 것에 대해 문 전 대통령도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며 “하지만 개별 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면 정치적 파장이 있을 수 있다 보니 책 소개를 통해 넌지시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정학의 힘』은 노무현 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 추천으로 방송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동기 변호사가 2020년 쓴 책이다. 김 변호사는 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라며 “한반도 전체의 역량을 결집해도 주변 강대국보다 (국력이) 부족한데 서로 대립해 남북 상호 간에 역량을 소모하는 현재 상황은 최악”이라고 썼다. 보수정권의 대북강경책을 비판하고 문재인 정부의 남북화해 모드를 지지하는 듯한 내용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페이스북에 쓴 글.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페이스북에 쓴 글. 페이스북 캡처

김 변호사는 또 “한반도가 특정 강대국에 편승해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위험하지만, 자력으로 세력균형을 형성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한국이 강대국과 맺는 지정학적 관계는 다층적이어야 한다”고도 적었다. 소위 ‘균형외교’를 강조하며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외교정책을 두둔하는 방향이다. 친노무현계 인사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무지하거나 변명하거나 회피하는 자는 운명에 갇힌다”며 보수진영을 비판하는 듯한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청와대 출신 민주당 초선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친미, 반중 노선을 걷는 것에 대해 문 전 대통령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여권의 공세를 반격하는 데 주력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불리한 지형을 바꾸기 위해 신색깔론, 신북풍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다. 독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2010년~올해 5월 북한 주민 송환 통계’ 보도자료를 통해 북송 시 평균 5.6일이 걸렸다는 점을 지적하며 “나포 후 판문점을 통한 추방까지 5일이 걸린 2019년 북송 사례를 두고 ‘서둘러 추방했다’고 볼 순 없다”고 주장했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단장(왼쪽)이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TF 4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건영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 단장(왼쪽)이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TF 4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건영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TF(단장 김병주 의원)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이 SI(특별취급정보) 취급 인가도 받지 않은 채 서해 공무원 사망 관련 보고를 받았다. 엄청난 보안사고”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4일 김 차장이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에게 SI자료에 해당하는 ‘월북 추정’ 판단 보고서를 보고받았는데 국방부 승인을 안 받았다는 게 민주당의 지적이다. 김병주 의원은 “대통령실 안보실이 개입한 정치공세다.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정부·여당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야당이 신색깔론으로 프레임을 씌워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강제북송 관련 문제제기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안보실도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규명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안보실의 정치개입이라며) 본질을 호도하려는 민주당의 정치적 접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김태효 차장은 SI를 열람할 권한이 있다”며 민주당 주장을 반박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5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5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강제북송 사건 재발 방지’ 토론회에서 “(북송 당시) 사진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거짓말을 하는 지가 드러난다”며 “(북송된) 무고한 두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북한과 위험한 거래를 해온 문재인 정권은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북송사건관 관련한 국정조사나 특검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TF(위원장 한기호)도 이날 국회에서 회의를 열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북송 사건을 직접 관장했다”며 공세를 폈다. TF에 따르면 북송사건 두 달 전인 2019년 9월 월남 북한 선박에 대한 현장대응 매뉴얼이 바뀌었는데, 해군·해경이 청와대 안보실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한기호 의원은 “담당 부서를 제치고 청와대가 아주 세세하게 (북송 과정에) 개입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며 “인권을 무시한 채 김정은 정권에 ‘제물’을 바치려 한 문재인 정부 처사에 대해 적절한 조치와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11월 탈북어민이 타고 온 북한 목선을 해군이 예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 탈북어민이 타고 온 북한 목선을 해군이 예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與 “北이 먼저 배 돌려보내라 요구” 野 “사실 아냐”

한편 2019년 11월 탈북어민 북송 당시 북한이 “돌려보내라”고 먼저 요구한 정황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배가 내려올 때 이미 ‘가고 있으니 보내달라’고 당시 청와대에 연락했고, 청와대와 부처가 이를 두고 논의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수사로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북송을 “자체적으로 결정했다”고 했는데 이와 상반된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인 김영배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북한 요청이 있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주장의 근거를 밝혀야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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