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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남남인데 이혼 안해줘"…1·2심 판단, 대법서 뒤집힌 까닭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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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59] 이름만 ‘부부’인 우리, 이혼 소송 결과는?  

[중앙포토]

[중앙포토]

저희는 지난 2010년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해에 아이가 찾아왔어요. 아이는 참 예쁜데 ‘결혼’은 달랐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게 시작된 갈등으로 신혼 이듬해부터 부부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이 상황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결혼한지 3년 만에 저는 이혼 소송을 준비했어요. 아내의 사과로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저희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3년 뒤에는 집을 나간 제가 이혼 소송을 냈죠. 법원은 가출한 저의 잘못(귀책사유)이  더 크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그 소송을 기점으로 저희 관계는 사실상 끝이 났어요. 저는 소송을 마치고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따로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내에게 양육비 50만원은 매달 꼬박꼬박 보냈습니다. 아파트 대출금도 제가 다 갚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이에게 연락도 못하게 해요. 다 본인를 통해서 하랍니다. 제 명의 아파트에 사는 아내는 비밀번호를 바꿔버리고, 열쇠도 주지 않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보려면 먼저 집으로 돌아오라고만 합니다. 저는 저희 관계부터 나아져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저는 2019년 다시 이혼 소송을 냈습니다. 여전히 아내는 이혼 할 뜻이 없다는 생각이 굳건합니다.
(※판결문을 각색했습니다.)

여기서 질문  

이미 결혼 생활은 파탄인데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 있을까요?

관련 법률은  

민법 제840조는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유책주의’에서는 이혼 소송에서 외도⋅폭행 등 상대방의 잘못이 있는 경우 이혼 판결이 나는 게 원칙입니다. 유책주의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이혼 소송을 제기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민법 제840조 제6호). 가부장적 질서가 팽배하던 1965년 남편이나 시댁이 잘못을 하고도 죄 없는 부인을 내쫓는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다만 혼인생활이 이미 깨진 뒤 상대방 역시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명백한데, 복수심이나 오기로 상대방을 묶어두려는 경우라면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허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결합된 공동체로서 서로 협조하고 보호하며 부부 공동생활로서의 혼인이 유지되도록 포괄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단순한 상식이나 도덕이 아니라 심지어 법(민법 제826조 제1항)에도 명시돼있는 의무입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법원 판단은

이 사건 1·2심에서 남편의 이혼 소송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며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이혼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이 이혼을 거부하고 있는 아내의 ‘혼인계속 의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결혼 생활의 모든 과정과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드러난 아내의 말과 행동·태도, 아내와 아이가 처한 상황, 이 결혼의 회복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하여 혼인계속 의사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또 재판부는 “남편이 자녀에 대한 면접 교섭의 의지가 있고 양육비를 꾸준히 지급해 오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같은 정황들이 아내와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로써 유책 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 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미성년자인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 사이에서 갈등과 분쟁, 이혼 소송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왔는데 과연 그러한 혼인 관계의 유지가 자녀의 정서적 상태와 복리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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