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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보려했더니 웬 '소비기한'…내년부터 달라집니다

중앙일보

입력

내년 1월부터 식품의 유통기한이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표기된다. 정부는 음식 폐기량이 줄어들고,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지난해 소비기한 표시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행까지 5개월 남은 상황에서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다. 식품 업계는 제품별로 소비기한을 새로 정해야 한다. 유통기한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게 관건으로 보인다. 정부는 도입 이후 6개월여 계도기간을 둘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식품에 '소비기한' 표기…"식품 폐기 감소 기대"

지난 1일 한 마트에서 직원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자료 사진. 뉴스1.

지난 1일 한 마트에서 직원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자료 사진. 뉴스1.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해 8월 식품의 날짜 표시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시행되면서, 1985년부터 이뤄지던 유통기한 표기는 38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소비기한(Use-by date)은 식품 등에 표시된 보관 방법을 준수하면 섭취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을 의미한다.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유통기한(Sell-by date)보다 더 기간이 길다. 보통 유통기한이 품질 안전 한계 기간의 60∼70%로 잡는다면, 소비기한은 80∼90%로 설정된다.

식약처는 소비기한을 도입하면 불필요한 음식 폐기량이 줄어들고,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흔히 유통기한을 섭취 가능한 기한으로 인식해, 유통기한 지난 제품이 불필요하게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12일 소비기한 연구센터 개소식에서 "내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식품폐기 감소로 인한 탄소 중립 실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럽·미국·일본·호주 등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소비기한을 도입한 만큼 국제적인 흐름에 발 맞추려는 취지도 반영했다.

"향후 4년간 200개 식품에 권장 소비기한 설정"

관건은 식품 업계의 실제 도입 여부와 소비자의 거부감 해소다. 내년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것은 의무지만, 그 기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는 영업자의 자율 책임 영역이다. 이 때문에 각 업체에서는 제품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소비기한을 직접 설정해야 한다. 제품의 특성과 유통 과정 등을 고려해야 하고, 제품별 소비기한을 확인하기 위한 각종 실험도 필요하다. 준비에 물리적인 시간이 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식약처는 제품 유형 별로 '권장 소비기한'을 마련하기로 했다. 권장 소비기한은 영업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시하는 소비기한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업체에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실험 등을 할 능력이 되는 대기업과 달리 상황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에게 권장 소비기한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12일 경기 의왕 소재 한국식품과학연구원에서 '소비기한 연구센터(센터)' 개소식을 열고, 제도 도입을 위한 기술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센터는 올해 빵류, 떡류 등 50개 유형에 대해 권장 소비기한을 설정해 공개하고, 향후 4년간 200개 유형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12일 오유경 식약처장이 ‘소비기한 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식약처.

12일 오유경 식약처장이 ‘소비기한 연구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식약처.

식약처는 이날 한국식품산업협회, 건강기능식품산업협회 등 식품 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소비기한 시행, 식품 표시, 기준·규격 등과 관련된 건의 사항을 들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권장 소비기간을 여러 종류의 식품에 대해 최대한 빨리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고, 소비자 교육과 홍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했다"고 말했다.

아직 소비기한 표시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의 거부감도 높은 편이다. 보관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식품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유통 기한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식약처는 냉장 보관기준 개선이 필요한 우유류(우유·우유 가공품)는 다른 품목보다 8년 늦춰 2031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또 식품 업계, 소비자 단체와 함께 교육·홍보에 대국민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소비기한 표시제도에 대한 인지도 제고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전문 전화상담센터도 설치해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소비기한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권오상 식약처 식품안전정책국장은 "38년 동안 시행해 온 유통기한 제도를 단 한 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고, 어느 정도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며 "업계에서 요구가 나오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기간이 적정한지 판단해 8월 중으로 계도기간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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