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역량 줄었다, 치솟던 해상운임 꺾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천장 없이 치솟던 글로벌 해상운임지수가 한풀 꺾였다. 7일 한국해운협회 등에 따르면 벌크선을 대표하는 건화물선운임지수(BDI)는 지난달 30일 2240을 기록했다. 한 달 전만 해도 BDI는 3000대였다. 5월 BDI 평균(3073)과 비교하면 833포인트나 하락했다.

또 다른 벌크선 운임지수인 케이프지수(BCI)도 지난달 30일 2434를 기록해 2500선 밑으로 내려왔다. 5월 평균 3514를 찍은 후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건설업 회복 지연 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에 따라 운임지수가 하락하고 있다”며 “원자재 시장 약세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벌크선뿐만 아니라 컨테이너선 운임도 하락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컨테이너 운임이 크게 떨어졌다. 중국 상하이와 미국 동부를 오가는 40피트 컨테이너 운송비는 지난 5월 평균 1만533달러였는데 지난달 넷째 주는 9804달러로 1만 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643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지만, 경기 둔화로 운송비가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중국 내 원자재 수요 둔화가 이어지면서 운임 꺾임새가 뚜렷하다”고 봤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벌크선은 석탄·곡물 같은 원재료를, 컨테이너선은 소비재를 포함한 완제품을 운반하는 데 쓰인다. 사람에 비유하면 각각 동맥과 정맥에 해당한다. 운임지수의 동반 하락은 경제 침체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교역량이 줄었다는 걸 의미해서다. 선박 운임지수가 경기선행지표로 분류되는 이유다. 일례로 BDI는 2008년 5월 20일 1만179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갑자기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로 같은 해 12월 5일에는 663으로 폭락했다.

김병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은 “올해 1월부터 북미-아시아 항로 컨테이너 운임이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고, 미국 소비 수요가 약화하며 운임이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가운데 기업의 재고는 쌓이는 중이다. 내구 소비재로 분류되는 전자제품은 재고가 특히 늘었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재고자산은 49조8477억원으로 전년 동기(32조3775억원) 대비 53.9% 증가했다. LG전자의 1분기 재고자산도 10조2143억원에 이른다. 금융사를 제외한 시가총액 상위 30대 상장사의 3월 말 기준 재고자산은 148조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41조원이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내구재인 중고차 값도 꺾임새가 뚜렷하다. 엔카닷컴 등에 따르면 7월 중고차 가격은 전달보다 2%~3% 넘게 내렸다. 그간 신차 대기 대신 중고차에 수요가 몰렸었고 여름 휴가철은 중고차 수요가 높은 계절이라, 가격 하락세는 매우 이례적이다. 경기 침체 우려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은 탓으로 보인다.

기업의 재고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 5월 미국 내 소매 재고는 7053억 달러(약 916조원)로 전년과 비교해 17.3% 증가했다. 지난 4월 중국 기업의 완제품 재고는 1년 전보다 20% 늘어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컴퓨터·전자제품 등 정보기술(IT) 업종 재고가 급증했다”며 “향후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마진 축소에 따른 진통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반적으로 재고가 쌓이면 관리비와 물류비가 증가한다. 재고 부담을 줄이려면 제품을 할인해서 팔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올해 상반기 주요 기업의 채용이 늘었는데, 하반기에는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며 “재고 증가에서 실적 악화와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하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