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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득주도 성장 설계한 홍장표, 진작 물러났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홍장표 KDI 원장이 2019년 3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연속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장표 KDI 원장이 2019년 3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연속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소주성이 빚은 명백한 정책 오류 반성부터    

전 정부 핵심 정책 기관장 자리 고집 말기를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설계자였던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어제 오후 입장문을 내고 사임의 뜻을 밝혔다. 홍 원장은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민간주도 성장은 감세와 규제 완화를 핵심 축으로 한 이윤주도 성장”이라며 “만약 총리께서 KDI와 국책연구기관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에만 몰두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해 법을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소득주도 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앉아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홍 원장의 입장문은 상식을 벗어난 궤변이다. 그가 말한 대로 정책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활발한 토론과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맞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장이 특정 정권의 정책을 설계한 사람이고, 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가 주도한 소득주도 성장은 지난 5년간 한국 경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최저임금 대상자 가운데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지난해 321만5000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퍼부은 재정 때문에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그가 KDI 원장 자리를 고집하면서 무엇을 더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탈(脫)원전 등 정책 오류가 명백히 드러난 전 정부의 핵심 공약을 수행한 기관장들은 더는 자리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임명된 한국원자력안전재단 김제남 이사장은 대표적인 탈원전 낙하산 인사다. 에너지기술평가원장에 이어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하고 있는 임춘택 원장은 민주당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탈원전주의자다. 전 정부의 장관급 인사인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말할 것도 없다.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자리라 할지라도 그간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고 특정 정파를 위해 봉사했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순리다. 물론 과학기술 출연연구원 등 정치바람을 타지 않고 전문성이 중요한 기관의 장이라면 임기를 지키는 게 맞다. 역설적이지만 차제에 홍장표 KDI 원장이 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정치적 임명직에 해당하는 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임기 전이라도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