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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바퀴 빠지더니 탈선까지…경영평가 꼴찌, 위기의 코레일

중앙일보

입력

 [이슈분석] 

1일 대전 조차장역에서 탈선한 SRT 열차가 지나간 레일이 뒤틀린 장출 현상(빨간원 안)이 보인다. [사진 코레일]

1일 대전 조차장역에서 탈선한 SRT 열차가 지나간 레일이 뒤틀린 장출 현상(빨간원 안)이 보인다. [사진 코레일]

 "더위 탓에 레일이 뒤틀렸거나, 열차 자체 결함 때문에 탈선했거나 어쨌든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책임을 면키 어렵겠네요."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지난 1일 대전 조차장역에서 발생한 SRT(수서고속철도) 탈선 사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조사위)가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결국은 코레일 책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탈선사고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기관사 실수 ▶장출 등 레일 이상 ▶열차 자체 이상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만약 기관사 실수라면 SRT를 운영하는 SR의 책임이지만 이번 사고에선 기관사 실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조사에선 폭염 탓에 달궈진 레일이 팽창하면서 뒤틀리는 '장출' 현상이 우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사고 현장에서도 장출과 유사한 상황이 확인됐다. 당일 대전은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까지 오른 데다 일사량도 많았다고 한다.

 장출, 열차 결함 모두 코레일 책임  

 선로 등 철도시설의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담당하고 있다. 2004년 철도구조개혁 당시 유지보수는 국가철도공단(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책무였으나 철도노조의 반발 등으로 코레일에 다시 위탁하게 됐다.

 어떤 이유에서든 장출로 원인이 밝혀지면 선로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는 코레일의 잘못이 명확해지는 셈이다. 또 SRT 열차의 정비도 SR 설립 때부터 코레일이 맡고 있다. 열차 자체의 결함으로 확인되더라도 그 역시 코레일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1월 충북 영동터널 인근서 바퀴가 빠진 채 탈선한 KTX-산천 열차. [연합뉴스]

지난 1월 충북 영동터널 인근서 바퀴가 빠진 채 탈선한 KTX-산천 열차. [연합뉴스]

 앞서 지난 1월 충북 영동터널 부근에서 발생한 KTX-산천 열차의 탈선사고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SRT 탈선까지 겹치면서 코레일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형국이다.

 KTX-산천 탈선 사고 때는 열차 바퀴가 떨어져 나간 것은 물론 윤축(바퀴축)이 통째로 빠져버린 사실까지 확인돼 심각한 제작 결함 또는 정비 부실이 의심됐다. 현재 조사위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영동터널 KTX 탈선도 원인 조사 중  

 만일 이 사고 역시 정비부실 탓으로 판명되면 그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코레일은 지난달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경영평가에서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았고,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돼 특별관리대상까지 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여러 악재가 겹쳐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도 유지보수 업무를 다시 철도공단이 맡고, 철도 관제업무는 정부로 이관한다는 국토부 계획에 대해 코레일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이 나온다.

1일 부산에서 수서역으로 향하던 SRT 열차가 대전 조창역 인근에서 탈선했다. [뉴스1]

1일 부산에서 수서역으로 향하던 SRT 열차가 대전 조창역 인근에서 탈선했다. [뉴스1]

 물론 철도노조는 유지보수와 관제업무를 떼어내는 건 "철도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론 코레일의 유지보수 인력 상당수가 철도공단으로 옮겨가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유지보수 인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철도공단으로 업무가 이관되길 바라는 응답이 상당히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며 "철도노조는 8000명 넘는 유지보수 인력이 빠지면 노조 세가 약화할 걸 우려해 반대하는 측면이 크다"고 전했다.

 사전 이상징후 보고, 관제 대응 논란  

 코레일이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철도 관제도 구설수가 적지 않다. 지난 2018년 말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당시 선로전환기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가 떴고, 명확히 원인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관제에서 열차 서행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2018년 말 발생한 KTX 열차 탈선사고 현장. [연합뉴스]

2018년 말 발생한 KTX 열차 탈선사고 현장. [연합뉴스]

 실제로 코레일의 철도운전취급세칙에는 선로전환기 장애시에는 시속 40㎞ 내외로 속도를 줄이도록 돼 있다. 그랬다면 사고 규모가 크게 줄었을 거란 의미다. 이번 SRT 사고에서도 논란은 재현됐다.

 국토부가 4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사고 열차보다 앞서 2~5분 전에 해당 구간을 통과한 열차의 기관사가 관제에 "열차가 흔들린다"며 선로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을 보고했다. 그러나 관제에서는 뒤따르던 사고 열차에 서행지시 등을 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차장역에서 이상징후 신고를 접수한 뒤 보고와 후속 조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조사위가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를 가리고 시스템 보완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보수는 철도공단, 관제는 정부로  

 항공관제는 국토부가 직접 관할하고 있다. 철도 역시 철도운영사인 코레일에 맡기지 말고 정부가 책임지고 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강희업 국토부 철도국장은 "철도 운영 기관이 코레일 혼자만 있을 때는 관제를 코레일이 맡아도 관계없지만, 이제는 SR 등 다른 운영기관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라며 "민영화 프레임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차량 정비 역시 아예 열차 제작사에 위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KTX와 KTX-산천 제작사인 현대로템에 차량 정비를 맡기면 유사시 책임소재가 더 명확해질 거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SR은 차량 정비를 일부 현대로템에 맡기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이처럼 철도 운영과 유지보수, 관제 등에서 상당한 변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코레일이 여러 사고의 책임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에 따라 소관 업무와 위상에 적지 않은 변동이 생길 거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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