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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에 「삼매」(산마이)라는 노름이 있다. 이 노름에서 여덟끗(8),아홉끗(9),세끗(3)의 수가 나오면 패한다. 바로 그 숫자의 일본어 첫 발음을 따서 「야쿠자」라는 속어가 생겼다. 불량배,깡패를 말한다.
하필 패하는 끗수를 가지고 불량배에 비유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이들의 손에 그런 끗수가 들어가면 승복하기보다는 차라리 판을 엎어버리고 만다. 경우고 이치고 없는 사람들이다.
그 야쿠자의 내력은 1백년도 넘었다. 도쿠가와(덕천)시대 말기부터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일본의 야쿠자는 유럽이나 미국의 범죄조직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 집단의 상하관계가 단순히 엄격을 지나 육친관계와도 같이 밀착되어 있다. 사회학자들은 그것을 「의제가족」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실제로 죽는다.
그점에선 육친관계를 초월하는 무서운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다. 배를 가르는 끔찍한 자결이나 목을 베는 형벌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일본식 봉건사회의 계율,그대로다. 이들은 배식이라는 의식을 갖고,「인의」를 지키며,조직의 계율을 어기면 가혹한 파문령이 내리고,「나와바리」로 불리는 활동영역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직업적인 절도단이나,마약밀수,마약 상습복용자들,매춘집단 등이 그런 조직에 얽매여 있다. 요즘은 그것이 단순한 사조직을 넘어 번듯한 간판까지 내붙인 회사나 문화,사회 사업단체로도 행세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얘기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민속씨름협회 부회장이라는 그럴싸한 명예직을 가진 사람이 무슨 컨설턴트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일본의 야쿠자와 손을 잡고 범죄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갔다. 시장조사니 기획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남의 회사로부터 직업적으로 돈을 받아낸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반사회적인 집단이 기생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에 있다. 법과 도덕이 마비되고,경제적으로 안정을 잃고,투기가 횡행하고,놀고 먹는 사람들이 많고,사회가 불안하면 별의 별 범죄들이 다 고개를 든다.
우리는 야쿠자가 두려운 것이 아니고,바로 야쿠자가 활보할 수 있는 그런 사회분위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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