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민주당 법사위 화상 회의에서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을 향해 성희롱성 발언을 한 최강욱 의원(비례)에게 6개월 당원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최 의원이 속한 '처럼회' 멤버인 민주당 강경파 김용민 의원(경기 남양주병)은 "야만의 시대"라며 반발했고, 안민석 의원(경기 오산)도 "월드컵 앞두고 손흥민을 집에 보낸 꼴"이라며 윤리심판원 결정을 공개 비난했다. 당사자인 최 의원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사건의 직접 증거가 없다며 재심청구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이 충분한 진상조사 후 징계를 결정한 걸 보면 최 의원의 성희롱성 발언은 사실로 봐야 합당하다. 법사위 의원들이 참석한 공적인 회의에 의원과 보좌진 등 여러 사람이 참석한 자리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통상 성희롱 의혹을 받는 당사자라면 발언 사실 자체는 인정하되 성적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게 상식적인 해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최 의원은 성적 표현이 아닌 비슷하게 들리는 ‘짤짤이’라는 게임을 언급한 거라면서 아예 사실을 부정했다. 짤짤이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단어로, 손안의 동전 숫자를 맞히는 놀이라 적어도 둘 이상의 사람이 필요하다. 참석한 여러 보좌진의 증언도 있지만 맥락상 짤짤이라고 말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순간적인 실수였다고 사과하고 넘어갔으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최 의원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보자를 색출한다면서 이 단어를 듣고 모욕감을 느낀 피해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결국 민주당 여성 보좌관들이 최 의원의 허위 해명과 이에 따른 제보자 모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최 의원은 마지못해 5월 4일 "○○이가 아니라 짤짤이라고 말했다"는 해명은 철회하지 않은 채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 발언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은 보좌진들에게 사과한다, 모욕감·불쾌감을 느꼈을 국민에게도 사과한다"고 물러섰다.
이상하지 않은가. 사과란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마땅한데 여기엔 사실인정이 빠져있으니 말이다. 형식은 사과인지 몰라도 오히려 적극적 방식의 사실 부정일 뿐이다. 나는 최 의원의 성희롱 발언 자체보다 이후의 사실 부정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공적 인물이 공적 자리에서 한 발언조차 부정하면 거짓이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는 위험한 신호를 우리 사회에 보내는 꼴이라서 그렇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주변의 응원까지 받으면 정작 용기 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낀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목소리 내지 말라는 부당한 경고로 작용하기도 한다. 민주당 강성 팬덤인 '개딸'이 징계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진 특정 의원들의 좌표를 찍어 문자 폭탄 공세를 펼친 것 역시 사실 부정이 초래한 또 다른 사회적 해악이다.
최 의원의 사실 부정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과연 단어 하나 내뱉은 데 따른 징계 수위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당내 심판원이 아니라 민·형사 법정에서도 발언 수위에 따라 경고 정도로 가볍게 끝나는 경우부터 파면·해임 등 중징계가 내려지는 사례까지 다양하다. 보통 사람들은 가해자의 성희롱 발언 자체만으로 징계 수위가 정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발언 자체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문제 제기 이후 가해자가 보인 태도, 그리고 2차 가해 여부 등이 모두 징계 수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식에 기초해서 이 사건을 한번 보자. 최 의원의 발언 자체는 당시의 상황이나 앞뒤 대화 맥락 등에 비추어 볼 때 중징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악의적으로 성적 발언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발언의 직접적 상대방인 김남국 의원(안산시 단원구을)이 불쾌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최 의원과 김 의원이 위력관계가 아닌 상호 우호적 관계라서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징계가 과한 걸까. 아니다. 오히려 적절했다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성희롱 여부는 가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자가 성적 불쾌함을 느꼈는지, 또 피해자 외에 다른 보통 사람 역시 성적 불쾌감을 느낄만한 사안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의도가 없었다고 성희롱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성희롱 발언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도 성적 불쾌감을 느낄만한 환경이었다면 피해자로 보는 게 대법원 판례다. 발언의 직접 상대방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성희롱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공적 인물인 최 의원은 제보자뿐 아니라 국민 전체를 상대로 허위 해명을 했다. 사실을 부정하느라 상황을 비틀고, 이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개딸)이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피해자를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으니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화상회의 중 동료 의원을 상대로 부적절한 성희롱성 발언을 했습니다.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잘못된 발언임을 인정합니다. 상대 의원과 회의에 참석한 모든 분께 불편함을 끼친 데 대해 사과합니다. 국회의원의 품격에 맞지 않는 용어를 사용한 데 대해 국민께도 죄송합니다.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최 의원이 이 사안이 공론화한 후 즉각 이런 내용을 담아 사과했더라면 ‘짤짤이 의원'이라는 멸칭으로 희화화하지도 않았을 테고, 지지자들이 너무도 뻔한 사실을 부정하는 논거를 만드느라 우왕좌왕하지도 않았을 거다. 사실 최 의원뿐만이 아니다. 앞서 여러 민주당 지자체장의 성비위 사건에서도 목격했듯이 민주당 사람들 가운데 '사실 부정'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 많다. 지지자들 역시 따끔한 비판 대신 진영논리에 빠져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민주당 정치인들을 옹호하면서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이 퇴행의 열차를 멈추게 하는 힘은 오직 정직뿐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직이 아니라 침묵으로 퇴행의 열차를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