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택이 고발한다

6년 버티다 우동값 인상했다…尹정부에 바라는 딱 한가지

중앙일보

입력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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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물가가 무섭게 오르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연일 인플레이션 위기 관련 기사가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식당을 꾸려가는 자영업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새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와 달리 이 엄중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답을 갖고 있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한가하게 정부의 방침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먹고 살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 주력 메뉴인 우동 가격을 15% 올렸다. 6년 만의 인상이었다. 지난해부터 이미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식자재 가격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러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버티고 버텼지만 4월이 되자 원가 상승분을 언제 음식값에 적용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5월 들어 기존의 아르바이트 시급으로는 도저히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젠 더 버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마음 한구석에는 코로나 19 후유증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 덥석 가격을 올렸다가 고객들로부터 외면받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주변 경쟁업소의 가격 인상 분위기에 맞춰 뒤늦게 결단했다. 이런 식당 살림살이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고객이 꼮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경제의 거울이 되겠다 싶어 이 과정에서 겪은 바를 한번 써본다.

음식값 인상은 고육지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뉴스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뉴스1]

우선 질문부터 던져본다. 식당 주인들은 왜 음식값을 올리는 걸까. 대부분 매출이 주요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장 매출을 늘리려고 음식값 올리는 식당 주인은 없다. 예를 들어보자. 1만 원짜리 100그릇을 팔던 식당이 가격을 20% 올리면 매출이 1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늘 거 같지만 막상 가격을 올려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른 값에 놀란 손님이 덜 찾는 바람에 100그릇 팔리던 게 84그릇만 팔려 결국 매출은 얼추 같아진다. 그런데도 왜 가격을 올릴까. 그건 100그릇 팔 때보다 오히려 수익성이 좋아져서다. 84그릇만 만들면 재료비는 적게 들고 서빙 인원도 그만큼 줄일 수 있어 전체 인건비가 덜 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임시방편이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식자재값 급등은 메뉴판 가격을 조정하는 식으로라도 주인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오르는 인건비는 정말 답이 없다. 핵주먹으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누구나 처맞기 전까지는 플랜이 있다"는 명언이 생각날 지경이다.

1960년대생인 나 같은 기성세대는 수십 년 전 중학교 사회 시간에 임금을 올리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실질소득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국제 경쟁력만 떨어진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내 욕심만 채우는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는 나쁜 일이라 믿으며 자랐다. 그런데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인건비 조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물가 관리를 해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라는 내 과거 상식에 반하는 정책을 내세워 지난 몇 년간 강제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만용을 부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홀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일자리는 요즘 주 단위로 시급이 바뀐다. 1만2000원을 넘어 1만5000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결과가 최저임금 1만원을 밀어붙인 지난 문 정권 탓만 아니다. 미리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어쩔 수 없이 인플레에 빠져든 측면이 있다. 문 정부가 소주성을 밀어붙이지 않았어도 오를 인건비는 어차피 올랐을 거다. 그런데 정부 주도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니 부작용만 만들어버린 꼴이 됐다. 물가상승, 그리고 취약계층의 취업난이라는 부작용 말이다.

약자 일자리부터 없앨 수밖에 

종전 시급으로는 더이상 알바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식당 주인들은 오른 시급으로 알바를 구하는 대신 기존 인원을 줄였다. 알바 자리를 구한 젊고 민첩한 학생은 같이 일하는 인원이 줄어 좀 더 바쁘지만 그만큼 시급이 올랐기에 수긍하고 일을 한다. 문제는 과거라면 큰 문제가 없던 노령의 홀서빙 아줌마나 장애 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이전 같으면 주인이든 같이 일하는 알바 동료든 적당히 서로 도와주며 일이 서툴러도 참고 일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도저히 일이 돌아가지 않을 만큼 인원이 줄면서 알바끼리의 갈등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주인은 하는 수 없이 저성과 인력은 줄이고 대신 일 잘하는 소수정예 직원은 성과급을 주면서까지 붙잡는다. 똑같은 알바 자리를 채우는 직원의 수입이 급격히 벌어지고 이유다.

지난 1월 서울 명동의 한 폐업 점포에 붙은 임대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지난 1월 서울 명동의 한 폐업 점포에 붙은 임대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이게 다가 아니다. 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났다. 주변 상가가 비어 있을 때는 최소한 임대료 상승 압박은 없었는데 지난 몇 년간 땅값이 오른 데다 세금 부담에 지친 집주인들이 금리 인상 소식에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몇 년 못 올린 임대료를 인상한다는 얘기다. 점포 월세는 부동산 가격에 연동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금리 인상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대체로 건물은 대출이 끼어 있는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늘어난 세금에 이자 부담까지 커졌으니 임대료를 올리려 하는 게 당연하다. 전기료· 가스비 등 광열비와 유류비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 얘기는 차마 입 밖에 꺼내기도 무서우니 그만하자.

고원자재가 고환율 고금리라는 3고(高)에 고임금에까지 이겨내야 하는 자영업자가 생존하는 방법은 뭘까. 원가는 덜 들면서 손님이 만족하는 메뉴를 개발해 많이 팔고, 더 높은 시급을 주더라도 적은 인원으로 유지해 순익을 확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작은 가게가 아니라 큰 기업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돈 안 되는 건 정리해 그 돈으로 새 상품을 개발하고, 팀장 입에서 네 명 데리고 하던 프로젝트를 이번엔 세 명으로 끝내겠다, 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솔직하게 국민 설득해야 

가게 살림이나 기업 경영이나 국가 경제나, 이처럼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그런데 왜 정부는 당장 급한 실질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일개 식당 주인으로서 결코 정부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언제 빨리 전쟁을 끝내게 해 달라고 했나, 임대료 못 올리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나, 당장 뚝딱 원전을 지어 전기료를 낮춰 달라고 했나, 아니면 최저임금을 반으로 뚝 잘라 달라는 비현실적인 요구를 했나.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굳은 표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굳은 표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지금 정부에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가게 주인이 알바 한 명을 쓰더라도 붙들고 하소연하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국민을 이끌어가는 정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같은 마음을 먹을 수 있게 지향점을 제시해 달라는 거다. 가령 물가 급등에 가파른 임금 상승이 겹쳤지만 기업이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는 긴축하고 효율을 높여 재정을 건전하게 할 테니, 국민 개개인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부탁을 진솔하게 해달란 말이다. 기업은 생산성을 더 높이고 근로자는 기왕 오른 임금이라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노력해서 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난 경제학자도, 엘리트 경제 관료도 아니지만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상식만으로도 물가가 올라도 효율과 생산성이 높아지면 국제 경쟁력이 살아나 기업은 돈을 남기고 그 돈은 다시 투자되어 내수를 지탱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걸 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벗어나면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이 정상을 찾을 거라는 것도 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내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같은 사기성 슬로건을 현실화하려고 '정부는 세금을 아낌없이 펑펑 쓸 테니 대기업이나 부자는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로는 이 경제 난관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 역시 확실히 안다.

이번에 미안한 마음으로 올린 메뉴판 가격을 이번 정부가 끝날 때까지 올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