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 반대는 큰 후퇴"…서방 동맹국 일제히 거센 비판

중앙일보

입력 2022.06.26 16:39

업데이트 2022.06.26 16:49

미국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보장 판례' 폐기 결정에 대해 영국·프랑스 등 서방 동맹국 지도자들이 후진적 행보라며 비판했다. 특히 뉴질랜드 총리 등 여성 지도자의 실망감이 두드러졌다.

낙태권 폐지를 반대하는 한 미국 여성이 25일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내 몸에 대한 것은 내가 선택한다"는 의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낙태권 폐지를 반대하는 한 미국 여성이 25일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내 몸에 대한 것은 내가 선택한다"는 의미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영 총리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

2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4일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나는 이것을 큰 후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미국서 전해진 뉴스는 끔찍하다"면서 "정부나 정치인 혹은 남성이 여성에게 그들의 몸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낙태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며 "미국 대법원에 의해 자유에 도전을 받은 모든 여성에게 연대를 표시한다"고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미국의 상황은 성 평등을 향한 긴 여정을 상기시킨다"며 "독일은 물론 세계의 많은 곳에서 여성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데, 단호히 그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CNN은 "미국은 G7(주요 7개국,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과 다른 동맹국 사이에서 낙태법의 본거지 역할을 했지만, 이번 판결로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동맹국과 멀리 떨어져 있게 됐다"고 전했다. 전 세계 낙태 규제에 대해 추적하고 있는 인권단체 미 생식권리센터(CRR)에 따르면 G6에선 임신 주 수, 배우자 동의 등 세부 조건이 있지만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당혹스러운 결정"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AP=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AP=연합뉴스

여성 지도자들의 비판은 더욱 날카로웠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25일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신체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성들의 기본권을 앗아가는 것을 보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당혹스러웠다"면서 "여성과 소녀가 수많은 시험대에 직면해 있고, 씨름해야 할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같은 싸움을 반복하며 후퇴하는 게 아니라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살아오는 동안 여성 인권과 관련해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라면서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낙태 반대, 반(反)여성 세력을 대담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 최고대표도 "여성 인권과 성 평등에 있어 큰 타격"이라면서 "지난 25년간 전 세계 50여 개국이 낙태 관련 규정을 완화했는데, 미국은 이런 흐름에서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애플·아마존 등 '원정 낙태' 지원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 테레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 텍사스주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낙태를 허용하는 뉴멕시코주는 올해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 조치가 도입된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 온 낙태 환자들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 테레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 텍사스주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낙태를 허용하는 뉴멕시코주는 올해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 조치가 도입된 텍사스주와 오클라호마주에서 온 낙태 환자들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은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 구트마허연구소를 인용해 미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낙태를 사실상 금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앨라배마·오클라호마·애리조나·아칸소·켄터키·미주리·사우스다코타·위스콘신·웨스트버지니아·루이지애나 등 최소 10개 주에선 임신 중절 수술을 중단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이로 인해 미국 내 다른 주는 물론 멕시코 등으로 '원정 낙태'가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주요 기업은 직원 또는 배우자가 '원정 낙태'를 원할 경우 여행 경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나섰다. 로이터는 대법원 판결 직후 마이크로소프트(MS), 골드만삭스, 나이키 등이 참여하면서 지원 기업이 최소 24곳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 도이체방크, 애플, 월트디즈니, 아마존, 차량호출 업체 우버·리프트,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 마스터카드, 스타벅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 등도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의 경우 100마일(약 160㎞) 이상 이동해 낙태 등 의료 시술을 받는다면 최대 4000달러(약 518만원)의 여행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의 원정 낙태 지원 움직임은 지난해 9월 텍사스주에서 임신 중절 금지 법안이 시행되면서 시작됐고, 지난달 초 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유출되면서 불이 붙었다.

미국 정부도 '낙태권' 지원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25일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 국무부는 모든 직원이 거주지에 상관없이 산부인과 시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군의 건강과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산부인과 시술 접근에 있어 어떤 차질도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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