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아크로비스타 앞 유튜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팀 기자

박태인 정치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사저 앞 유튜버 시위가 주는 고통을 잘 알고 있다. 3년 전, 지금도 윤 대통령이 사는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앞을 찾아간 유튜버 A씨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을 협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결정 전 “너 살던 집도, 차 번호도 있다” “진짜 분해될지도 모른다”고 협박하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는 “우리 지검장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산책하러 못 나가신다. 준사법기관에 대한 테러”라며 안타까워했다. 곧 압수수색이 시작됐고, A씨는 2주 뒤 협박과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은 그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서영교 의원의 집 앞에 간 영상까지 판사에게 제출하며 법대로 처리했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선언한 유튜버들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에서 24시간 집회를 선언한 유튜버들의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앞 유튜버 시위에 대해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다.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3년 전 법에 따라서 처리된 A씨였다. 피해자만 달라졌을 뿐 그와 양산 사저 앞 유튜버들 간의 차이는 없어 보였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의 집 앞을 찾아가 평온을 흔들며 공해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는 것. 그 증오가 후원금으로 돌아오는 점도 비슷하다. 3년 전 A씨를 수사했던 검사는 “집 앞으로 찾아가 시위를 하는 게 피해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다는 걸 알고 이러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검찰 수사가 다소 과도하단 생각도 했지만, 선을 그어야 할 시기란 점에 공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량에 화염병이 날아들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가 신변 보호를 요청했던 시기였다. 그때부터 곳곳에서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양산 시위에 대한 반발로 또다시 윤 대통령 집 앞엔 유튜버들이 모여들고 있다. 증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이다. 지난 정부는 이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다. 법대로 처리한 것 역시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문자 폭탄을 ‘양념’이라 칭하며 진영 논리를 부추겼던 과거의 대가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대로는 모두가 불행할 뿐이다. 3년 전 구속됐던 A씨는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된 뒤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조국 사태 이후 입장이 돌변했다. 대선캠프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윤 대통령을 위해 열렬히 선거 운동을 했다. 지금은 이른바 진보 유튜버의 아크로비스타 앞 시위를 막으려 집회 장소도 선점 중이다. 양산 시위 논란이 거세진 뒤 여권 관계자에게 A씨란 유튜버를 아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 처벌불원서를 써줬다”는 것이었다. “법에 따르면 된다”는 말보다 이 처벌불원서가 증오의 악순환을 끊어낼 더 나은 출발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