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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보다 매출 높은 기업 이끄는 中 여성 대부호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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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马云), 왕젠린(王健林), 마화텅(马化腾).’ 중국에서 손꼽는 대부호를 언급할 때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대표 기업의 수장이자 매해 세계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반면 중국 여성 부호를 떠올릴 때는 둥밍주(董明珠), 양후이옌(杨惠妍) 정도가 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여성 부호 순위를 뒤집으며 등장한 인물이 있다. 장쑤(江苏) 헝리(恒力)그룹의 판훙웨이(范红卫)의 이야기다. 판훙웨이가 이름을 알리게 된 데에는 그의 가치가 1700억 위안(31조 6200억 원)에 달하며 몸값이 크게 뛰었다는 사실 외에도 매출 기준 헝리그룹이 화웨이를 제치고 중국 2대 민영기업으로 성장한 배경도 한몫 했다. 판훙웨이를 비롯해 헝리그룹이 이 같은 ‘대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서 모두 말렸으나, 돈 끌어모아 방직공장 인수

판훙웨이 [사진 시나닷컴]

판훙웨이 [사진 시나닷컴]

판훙웨이는 전문대 졸업 이후 학력을 높이기보다 취업을 선택했다. 한 방직 공장에 들어가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회계 분야는 사람들에게 ‘철밥통’으로 여겨지는 분야였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회계 직무를 담당한다는 것은 부러움을 사는 직업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판훙웨이는 지금의 남편인 천젠화(陳建華)를 만났다.

천젠화는 건설노동자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고 판훙웨이도 다니던 직장에서 착실히 연차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젠화에게 사고가 일어났다. 부상을 당한 천젠화는 건설 현장 일을 그만두었지만, 생계를 위해 실크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판훙웨이와 천젠화는 서로의 현실적이고 성실한 면에 빠져들었다. 아직 젊은데다 근면한 둘은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에서 모은 수입으로 혼인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평생 적당히 안정적인 자리에서 머무를 줄 알았던 둘은 돌연 창업을 한다.

천젠화는 사업 루트 개척을 담당했고 회계 직무를 지속했던 판훙웨이는 재무 관리를 담당했다. 오랫동안 방직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온 덕분에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사진 시나닷컴]

[사진 시나닷컴]

1994년,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부도 위기에 처한 방직공장을 인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들을 말렸다. 아직 인수할 만큼 자금이 모인 것도 아닌 데다 레드오션인 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던 천젠화와 판훙웨이는 이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자금을 빌리고 모아두었던 저축까지 털어 해당 방직공장을 인수한다.

이들이 공장을 인수한 데 쓰인 돈은 무려 369만 위안(6억 8619만 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환율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인수 건 외에도 사업 확장을 위해 이들이 빚진 금액은 총 400만 위안(7억 4384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 지인들이 보았을 때 이들이 엄청난 규모의 부채까지 지며 인수에 나선 것을 ‘무모한 도전’으로 여겼다. 대담한 결정을 한 판훙웨이와 천젠화는 오히려 자신 있었다. 천젠화의 노련한 경영 능력에 판훙웨이의 날카로운 시장 통찰력과 판단력까지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에 해당 공장은 연 1000만 위안(18억 5960만 원)의 이윤을 남길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 시나닷컴]

[사진 시나닷컴]

훗날 판훙웨이는 공장 구조와 재무 관리에 대한 지식은 본인이 이미 숙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남편의 인맥과 비즈니스 기술까지 얹으면 공장 운영에 무리가 없으리라 확신했다고 회상했다. 바로 이 공장 인수 성공을 계기로 부부는 초기 중국 제조업 시장에 당당히 발 딛을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뛰어난 사업 수완 덕분에 성공가도 오른 판훙웨이 부부

곧이어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1997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외환 위기가 발생한 때다. 당시 중국에서도 이례적인 외환 위기를 맞아 수백 개의 기업이 줄도산에 처했다. 판훙웨이 부부가 몸담고 있는 방직 제조업도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들이 자리 잡고 있는 쑤저우(苏州)에 거점을 두고 있는 수많은 방직공장이 줄지어 부도를 내고 공장·설비 등을 헐값에 팔았다.

다른 곳에 비해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이어가고 있던 판훙웨이 부부는 문 닫기 직전인 상태의 공장과 기업을 대거 사들인다. 창업 초반에 이어 두 번째로 인생을 건 도박을 한 셈이다.

판훙웨이는 뛰어난 회계 능력, 자금의 합리적인 배분 등 수완을 발휘해 남편과 함께 죽어가는 공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덕분에 경제 위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부부의 자금 규모는 수 배로 증가했으며 이들의 회사는 쑤저우 지역을 넘어, 성(省) 지역을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사진 财一通 바이자하오]

[사진 财一通 바이자하오]

거침없는 투자 행렬로 세계 500대 기업 ‘우뚝’

2022년, 섬유 제조 업계에 최신 기술이 도입되며 방직 업계는 변화를 맞이한다. 이 기회를 틈타 판훙웨이와 천젠화는 2억 위안(371억 2800만 원)을 투자해 화학 섬유 공장에 대거 변화를 준다. 산업 구조 조정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운 이들은 지금의 헝리그룹을 세우고 그룹 차원의 경영에 본격 돌입했다. 지금은 화학섬유·제조·폴리에스테르 등 다양한 사업을 아우르는 방직 업계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1년, 세계 500대 기업에 진입한 헝리그룹은 쑤저우 민영기업 중 선두기업으로 꼽힌다.

[사진 시나닷컴]

[사진 시나닷컴]

‘종합기업’ 헝리그룹, IPO 도전

종합기업으로 성장한 헝리그룹은 2012년, IPO 준비에 돌입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수익성 확보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최종 상장에서 미끄러졌다. 고심 끝에 판훙웨이는 차선책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다롄(大连)의 한 석유화학 장비 상장사가 경영난으로 상장 폐지 위기에 처한 것을 발견했다. 이 기업은 마지막 자구책인 구조조정까지 실패하자, 공모에 나섰다. 헝리그룹은 해당 기업의 주식을 인수,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이로써 헝리그룹은 석유화학까지 아우르며 종합기업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되었다.

‘IT 굴기’ 화웨이 능가하는 민영기업

우회상장을 통해 사업 다각화까지 성공한 헝리그룹은 세계 시장을 목표로 두고 있다. 순수 매출만 두고 비교했을 때 헝리그룹은 화웨이를 뛰어넘었다.

2021년 기준, 헝리그룹은 매출은 7000억 위안(129조 9410억 원)으로 화웨이의 매출 6300억 위안(116조 9469억 원)을 웃돌았다. 바로 직전 해인 2020년, 화웨이의 매출이 헝리그룹보다 2000억 위안(37조 1260억 원)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다. 두 기업이 다른 업계에 속해있지만, 화웨이 매출액과의 비교는 판훙웨이가 세운 목표였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헝리그룹의 실적 모멘텀이 강력하다고 입을 모았다. 매년 성장세를 보이는 헝리그룹이 판훙웨이와 천젠화를 배경 삼아 우량기업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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