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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면 최악 적자, 올리자니 고물가 쇼크…'전기료'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분기 전기요금 결정을 앞두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한국전력 적자를 고려하면,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높아진 물가가 부담이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 적자를 키웠다며 인상을 더 늦춰서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전 “요금 인상은 필수, 인상 폭 늘려야”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계량기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계량기 모습. 뉴스1

16일 한국전력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 3분기(7~9월)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h) 당 3원 올리는 연료비 조정단가 산정내역을 통보했다. 전기요금은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해 분기마다 정하는데 이때 최대 올릴 수 있는 인상 폭이 ㎾h당 3원이다.

한전은 이와 별개로 현 제도를 바꿔 요금 인상 폭을 더 늘릴 수 있게 요청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적자를 모두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분기(3원/㎾h)와 연간 연료비 조정단가(5원/㎾h) 상·하한을 확대해 달라고 했다. 올해 ㎾h당 9.8원 올리기로 한 기준연료비도 최근 연료비 상승분까지 반영해 더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한전은 요금 인상을 미룰 경우 이를 미수금으로 계상해 추후 정산하고, 연료비뿐 아니라 적정원가와 적정투자보수를 반영한 총괄원가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 및 제도 개선 요청에 산업부 관계자는 “결국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분기 상한선 이상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산업부도 한전과 같은 입장에서 기재부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전의 요금 인상안을 검토한 뒤 오는 21일 3분기 전기요금을 최종 결정한다.

“한전 적자 30조 달할 것”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은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둔화하며 에너지 수요가 지난해 말부터 늘기 시작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난이 겹치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기준이 되는 전력도매가격(SMP)은 4월 ㎾h당 202.11원으로 1년 새 164.7% 급등했다. SMP가 ㎾h당 200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에너지 가격 오름세에 전력구입비가 크게 늘면서 한전은 지난 1분기 7조7869억원의 기록적 영업손실을 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올해 한전 적자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한전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해외 발전소 및 국내 부동산 매각 등 자구책을 추진 중이다.

“3분기는 피해야” vs “더 미루면 안 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전집에 밀가루와 식용유 등 식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한 전집에 밀가루와 식용유 등 식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인상 시기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물가 당국은 오는 3분기가 물가 상승세의 정점이 될 거라고 본다. 코로나19 완화와 미국 드라이빙 기간(6~8월 미국 휴가철에 차량 운행이 늘어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는 시기)이 겹치면서 에너지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물가 상승세를 촉발한 지정학적 분쟁 해결에도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히 여름철 전력수요가 느는 점을 고려하면 요금을 올려도 3분기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14일 윤석열 대통령도 “(전기요금 인상은) 공급 사이드에서 물가상승 요인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다 취하려고 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업계와 산업부는 인상 시점이 늦어질수록 부담은 더 커진다고 우려한다. 특히 요금 인상 폭이 현재 1년에 5원/㎾h, 분기당 3원/㎾h으로 정해져 있어 3분기에 인상하지 않으면 4분기에 1년 최대 인상 폭까지 올릴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산업부 관계자는 “어차피 인상해야 한다면 시점이 늦어질수록 한전 적자 개선 효과가 떨어진다”며 “분기 최대 폭을 올려도 4인 가구 한 달에 1000원 남짓 요금이 오르는데 물가 부담을 우려할 정도 금액은 아니다”고 했다.

인상 미루면 재정 지원 필요할 수도

3분기에도 요금 인상이 미뤄진다면 한전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도 있다. 15일 박일준 산업부 2차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한전 상황은 대책 1~2개만으로는 해결 어렵다고 본다”며 추가 대책 필요성을 말했다.

실제 정부는 국제 유가가 급등했던 지난 2008년 상반기 연료비 상승분의 40% 수준인 6680억원을 재정으로 지원해 한전 재무부담을 줄여준 적이 있다. 다만 과거처럼 재정지원을 해주기에 한전의 적자 폭이 너무 크다는 점은 문제다. 또 한전의 적자를 정부가 보전하면 산업계에 우회적으로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통상 마찰이 발생할 수도 있다.

“탈원전 정책이 적자 키워”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정부가 딜레마에 빠지면서 전 정권이 요금 인상 시점을 실기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지난해 요금을 정상화해야 했지만, 여론을 의식해 이를 일부러 억눌렀다는 것이다. 박 차관도 “(전 정권이) 탈원전 도그마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에 소극적인 부분이 있고, 선거를 앞두고 연료비 연동제라는 틀을 만들었지만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이용률이 낮아진 점도 한전 재무 부담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원전 이용이 줄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LNG(천연액화가스) 가동이 늘었고, 이 때문에 적자가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16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 강행으로 전기요금이 40% 인상될 수 있다는 산업부 보고서를 묵살했다고 한다”면서 “탈원전은 문 전 대통령이 하고 뒷수습은 새 정부가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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