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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엔터사에서 일할 때 필요한 것은? [나는 아이돌 기획자다 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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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미의 ‘나는 아이돌 기획자다’ (3)

20입사 당시 JYP는 지금처럼 크진 않았지만, 이미 비, 원더걸스 같은 대형 신인을 키우고 있는 회사였다. 엔터 업계에 대해 잘 모른 채 '지겹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운 좋게 입사 기회를 잡았다. 사진은 2008년께 원더걸스. 왼쪽부터 소희,유빈,선미,선예,예은. 사진 중앙포토

20입사 당시 JYP는 지금처럼 크진 않았지만, 이미 비, 원더걸스 같은 대형 신인을 키우고 있는 회사였다. 엔터 업계에 대해 잘 모른 채 '지겹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운 좋게 입사 기회를 잡았다. 사진은 2008년께 원더걸스. 왼쪽부터 소희,유빈,선미,선예,예은. 사진 중앙포토

“여기 왜 지원했죠?”

“마케팅을 전공했는데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 콘텐트를 직접 만들고 알리는 주체가 되고 싶습니다”

답은 그럴듯했지만, 사실 난 그 당시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모집 공고의 업무 설명이 하고 싶은 일과 맞아 보였고, 재밌어 보였다. 또 앞서 여러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시간이 지겹다면, 인생이 다 지겨워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못 견디는 일이 무엇인지를 일찍 깨달은 편이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 뻔한 업무가 아닌 예측이 불가능한 일. 그런 일을 찾아 지원한 회사가 JYP엔터테인먼트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진하고 안일한 생각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고 그 생각은 아직 어느 정도 유효하다. 이 일은 재밌어야만 오래 할 수 있다.

JYP는 당시 규모가 지금처럼 크진 않았지만, 이미 글로벌 스타인 비와 ‘텔미’ 신드롬의 주인공 ‘원더걸스’를 키워낸 회사였다. 몇 번의 면접을 거쳐 운 좋게도 JYP에서 기획·마케팅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그 자리가 딱 한 사람을 뽑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입사 후의 일이다) 그렇게 처음 지원한 직장이자 지금까지 통틀어 가장 오래 다닌 회사가 됐다.

들어가보니 사수가 무려 3명이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이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9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들의 프로젝트(서태지, 이효리 등)를 이끌며 실무를 익혀온 사람이었다. 그때 그 선배의 눈에 나는 음악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설프게 들어온 풋내기처럼 보였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굉장히 고마워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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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가 준 첫 임무는 데뷔 전인 남자 아이돌 그룹 A의 온라인 프로모션을 위한 협찬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막막했다. 나도 모르는 그룹의 협찬을 따내라니. 사실 불가능해 보이는 업무였는데도,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데뷔도 하기 전인 아이돌을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에게 소개하고 상품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다른 회사의 인턴 시절,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협찬을 받으러 돌아다녔던 경험이 떠올랐다. 우선 아이돌과 잘 어울리겠다 싶은 상품들을 골랐다. 다음으로는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될 만한 브랜드(의류, 카메라 등)를 뽑았다. 몇 개 회사를 찾은 뒤 인맥을 총동원해 브랜드 담당자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 다음은 생각보다 쉬웠다.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제안을 했고, 가까스로 한 브랜드와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와 진행한 첫 프로모션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해보니까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된 첫 업무였다. 까다로웠던 사수도 이후엔 말없이 새로운 업무를 맡겨 주면서 조언을 해주거나, 업무 회의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내가 그래도 역할을 잘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랫동안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K팝의 인기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면서 산업 성장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그랜드 무쌀라'에서 열린 이란 국제 북페어 한국 부스에서 관람객이 한국 아이돌 사진으로 꾸민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K팝의 인기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면서 산업 성장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그랜드 무쌀라'에서 열린 이란 국제 북페어 한국 부스에서 관람객이 한국 아이돌 사진으로 꾸민 스마트폰 배경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재밌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을 15년째 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내 기준에서 꽤 이상적인,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다. 무엇보다, 적어도 지겹지는 않다. 특히 내가 한창 일을 배울 때는 K팝이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규모가 커지기 전이라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업무가 익숙해지고 ‘이제 배울 것이 더 이상 없겠구나’, 싶으면 새로운 프로젝트와 임무가 주어졌다. 변화를 좋아하고 익숙한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보다는 새로운 일과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업무다.

난 소속 회사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업무를 익히는 일도, 내가 담당하는 아이돌에 대한 반응을 보기 위해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는 일이나 사진 보정과 같은 사소한 일도 즐거웠다. K팝과 가사, 뮤직비디오, 무대 영상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보며 내가 10대 때 느꼈던 전율을 다시 한번 경험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 크고 작게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실행되는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모두 아이돌과 함께 ‘밥’을 먹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경험이다. 지금까지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은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 나에게 맞는 일, 이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 10대 때 보았던 K팝 무대와 영상, 드라마들, 팬으로서 활동했던 경험이 다 업무에 도움이 됐다. 가까이서 보니 무대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을 알게 되어 그런지 오프닝을 보면 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어떤 장르보다도 종합적인 예술 작품으로 느껴졌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 출장이 잦아 잠을 제대로 못 자도 괜찮았다. 회식을 하다가 다시 회사에 돌아와 일을 마무리 해야 하는 강도 높은 업무에도 즐거웠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온전히 일에만 빠져 살았던 시기였다. 면접장에선 몰랐지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윤선미 퍼스트원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 본부 총괄 이사

JYP 엔터테인먼트 기획ㆍ마케팅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5년째 K팝 콘텐트 기획ㆍ제작ㆍ마케팅을 하고 있다. FNC 엔터테인먼트, 다날 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친 뒤 현재 회사에서 브랜드 기획·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원더걸스, 2PM, 미쓰에이, 백아연, AOA, 체리블렛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일했다. 엔터테인먼트 교육 플랫폼 엔터잡에듀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엔터 실무자를 위한 『빅히트 시그널』이 있다. xyz.project20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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