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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산업부 블랙리스트 실체 성역 없이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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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퓨전테크놀로지센터 사무실 앞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퓨전테크놀로지센터 사무실 앞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고발 3년 만에 백운규 구속영장 청구

청와대 윗선 개입 등 배후 규명·단죄해야  

검찰이 어제 문재인 정부 ‘산업부 인사권 남용 사건’(일명 블랙리스트 사건) 의혹에 연루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 발전 공기업 등 13개 기관장의 사직을 강요하고 특정 산하기관 후임 기관장 임명 과정에서 부당지원을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다. 며칠 뒤 구속 전 피의자 심문 후 법원 판단이 나오겠지만 한 달여 전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고발 3년여 만에 주무 장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만큼 수사를 진척시킨 것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의의 지연을 바로잡고 비정상의 수사를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측면에서다.

이 사건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2019년 초 백 전 장관 등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께 산업부 박모 국장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돼 임기가 1~2년여 남은 공공기관장들을 광화문의 호텔로 불러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는 게 고발 사유였다. 하지만 2019년 6월까지 사퇴 기관장 7명을 조사한 뒤 수사가 전면 중단됐다. 당시 친정부 성향의 검찰 간부들이 수사를 막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최근에는 서울동부지검장들이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기 위해 수사팀에 압력을 가했으나 검사들의 반발로 실패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검찰이 이번에 사퇴 압박의 실행자였던 박 국장을 넘어 직속상관인 백 전 장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는 중요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 기류가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한다”는 쪽으로 급반전하면서 수사에 동력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야당이 “정치보복 수사” “코드 맞추기 수사”라고 비난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다. 노무현 정부 때도 없었던 사표 강요를 버젓이 자행한 사람들이 누군가.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지난 1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법리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징역 2년, 신미숙 전 대통령 균형인사비서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최종 선고됐다. 대개 블랙리스트 사건의 구조는 청와대 참모와 부처 장관이 긴밀하게 협조하는 형태다. 청와대의 지시 없이 각 부처 장관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검찰이 백 전 장관의 윗선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한 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죄해야 하는 이유다.

더 심각한 것은 산업부뿐 아니라 교육·과기·통일부 등에서도 사표 강요가 자행된 흔적이 많다는 점이다. 검찰은 2019년에 이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전 이사장, 교육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전 이사장 등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각 부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다시는 진영에 따른 차별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