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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야, 국회 닫아 놓고 ‘팬덤 정치’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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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원구성을 두고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국회가 2주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13일 국회 본관 제2회의장에서 국회 환경미화원들이 회의장 청소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회 원구성을 두고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국회가 2주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13일 국회 본관 제2회의장에서 국회 환경미화원들이 회의장 청소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주당 이어 국민의힘도 문자폭탄 세례

강성 지지자 아닌 ‘말 없는 다수’ 살펴야

대결과 적대, 분열의 ‘팬덤 정치’가 여야를 휩쓸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던 여권에서도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이 이 대표에게 비판적인 인사들을 공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조수진 의원이 난타를 당한 데 이어 최근엔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배현진 최고위원이 ‘문자 폭탄’ 세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얼마 전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이재명 의원의 강성 지지자인 ‘개딸’로부터 공격받을 때 “팬덤 정치를 부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했다. 정작 자신은 지지자들의 과도한 행태에 별말을 하지 않고 있다. 겸연쩍은 일이다.

여권에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을 자처하는 ‘건희사랑’ 운영자 강신업 변호사의 처신도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다. 한 시사평론가가 비판적인 언급을 했다고 SNS에 욕설을 쓰는 등 위압적인 행동을 해서다.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김 여사가 정비해야 한다.

민주당 쪽 사정은 여전히 안 좋다. 팬덤 정치를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정도인데도 나아질 조짐이 없다. 문자·전화 공세가 여전하고 최근엔 검은색 배경의 팩스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로 대량으로 보내 복합기가 고장났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쪽을 가리켜 ‘수박’(배신자란 뜻)이라고 비아냥대는 일도 다반사여서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수박이란 단어를 쓰는 분들을 가만 안 두겠다”고 했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국면에서 이른바 ‘문빠’로 불렸던 지지자들의 극성스러운 행태를 “민주주의의 양념”이라고 감싼 게 여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참으로 잘못된 인식이었다. 그때 제동을 걸었더라면 이 정도까진 안 됐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모두 느끼는 것이지만, 팬덤 정치는 결코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비판적인 맹종과 무조건적 공격이 만들어낸 ‘완력’이 합리적이며 온건하고 중도적인 목소리를 증발시키기 때문이다. 민주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민주당이 대선 이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인 행보가 반면교사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지지자의 압박 속에서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행했다. 다수가 지방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지만, 제동을 걸지 못했다. 외려 100% 찬성으로 가결했다. 민주당이 당초 합의를 깨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자신들이 가져가겠다고 해 후반기 원 구성이 안 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지금은 ‘팬덤’에 둘러싸여 진영·계파 싸움에 매몰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근래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안보 위기의 높은 파고가 밀려들고 있다. 국회 문부터 열고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강성 지지자 너머의 불안에 떠는 ‘말 없는 다수’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