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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유족 "아버지 작품은 모두의 것…미술관 위해 기증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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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WorK,1969 Oil on canvas 136 x 136 cm .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WorK,1969 Oil on canvas 136 x 136 cm .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사람들이 아버지 작품을 어디서 볼 수 있느냐고 종종 묻는데, 작품을 모아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없으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 전시 이후로 이런 규모 전시는 30주기가 아니면 힘들다고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

국제갤러리, '유영국의 색' 전시 #추상미술 거장 20주기 기념전 #유영국재단 "소장품 기증 뜻 있다" #자연 요소로 기하학 형태에 #강렬한 색채, 절제된 조형미학 #

"유영국미술관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유족인 저희가 건립과 운영까지 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나서 미술관을 건립하고 운영하겠다면 소장품을 기증하고 100% 협조할 계획입니다."(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고 유영국(1916∼2002) 화백의 20주기를 맞아 유 화백의 유족들이 '유영국미술관 건립' 희망을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유 이사는 고 유 화백의 둘째 딸이고, 유진 이사장은 장남으로 함께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이하 유영국재단)을 이끌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유영국(1916∼2002) 20주기 기념전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유영국미술관 건립을 논의할 때'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날 국제갤러리에서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유영국의 색(Colors of Yoo Youngkuk)'이 개막했다. 공공 미술관이 아닌 상업 화랑이 개최하는 전시이지만, 전시 규모와 콘텐트는 '미술관급'이어서 눈길을 모았다. K1~K3 총 4개 전시장에 걸쳐 작가의 시기별 대표 회화 68점과 드로잉 21점, 사진작품, 아카이브 자료까지 크게 펼쳤다. 전시작은 작가의 유족이 운영하는 유영국재단 소장품이 대부분이고, 국립현대미술관과 대구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의 기관에서 대여한 대표작 6점도 포함돼 있다.

유영국 전시는 2018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적 있지만, 20주기를 맞는 유족의 감회는 남달라 보였다. 유 이사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20년이 흘렀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이때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그림을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유영국 작가 20주기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9일 개막한 전시는 8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국제갤러리]

유영국 작가 20주기 기념전이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전시장 전경. 9일 개막한 전시는 8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국제갤러리]

유영국,Work, 1962, Oil on canvas , 81.5 x 101 cm,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Work, 1962, Oil on canvas , 81.5 x 101 cm,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Work,1992 ,Oil on canvas , 60 x 73 cm.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Work,1992 ,Oil on canvas , 60 x 73 cm.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작고 20주기 기념전 '유영국의 색'이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 [사진 국제갤러리]

유영국 작고 20주기 기념전 '유영국의 색'이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전시장. [사진 국제갤러리]

유영국미술관이 지어져야 한다고. 
그렇다. 생전에 아버지는 '미술관을 짓지 말아라'고 하셨는데, 그건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다는 뜻이었다.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나서 유영국미술관을 짓고 운영하겠다면 재단 소장품을 기증할 계획이다. 
유영국미술관이 왜 필요한가.  
모든 작가가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열심히 그림을 그리신 게 부잣집에 걸어놓으라고 하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식들 주려고 그리신 것도 아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셨다. 제일 좋은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작가를 외국에 알리는 작업도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저희 힘만으로는 안 된다. 미술관이 생기면 외국에 알리기도 더 쉬워질 거다
재단이 직접 지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좋겠지만 저희가 너무 부족하다. 재단 재정으론 미술관을 짓고 꾸려가기 힘들다. 건물만 짓는다고 미술관이 되지 않는다. 연구도 계속 이뤄져야 하고 지속해서 운영되기 위해선 공공기관이 나서는 게 맞을 것 같다.  

김환기 작가 이름을 내건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관장 박미정)은 그의 부인 김향안 여사가 나서 설립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 미술관은 유족 등이 작품을 기증하고 지자체가 건립해 운영 중이다. 강원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 서귀포시립 이중섭미술관 등이 있다.

유진 이사장은 "미술관 건립에 필요한 작품은 충분히 갖고 있다.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느냐는 게 더 중요한데, 재단 소장품(100점 이상)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있다. 아버지 작품으로도 좋은 미술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흩어진다. 지금이 건립을 추진할 적기"라고 덧붙였다.

유영국미술관 건립에 대해 미술계 관계자들은 "작가 위상을 생각할 때, 미술관은 당연히 지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일단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수장고와 연구인력 등을 고려할 때 특정 작가의 미술관 건립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유영국 작품을 모아 보여주는 공간이 필요하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전시 공간이 '미술관' 형태로 가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미술관 안에 '컬렉션' 형태로 가야 할지 폭넓은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도 "유영국 작가가 개인 이름을 붙인 미술관이 있을 만한 거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며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특정 작가를 위한 미술관을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단과 지자체가 협력해 기금을 만들고, 독지가들이 후원해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광수 미술평론가(전 산 뮤지엄 관장)는 "한국 미술사에서 유영국은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변환해 가장 순수한 추상의 세계를 펼친 작가였다. 작가의 업적으로 따지면 환기미술관이 있듯이 유영국미술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족들이 작품 기증의 뜻을 밝힌 만큼 국공립 기관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건립을 추진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아이비리인스티튜트 대표)는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유영국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유영국 저널'이 9호까지 제작됐다. 이 연구를 발판으로 미술관도 지어지고, 더욱 새롭고 창의적인 담론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영국미술관은 2010년경 그의 고향인 경북 울진군에서 건립이 논의되다가 중단된 바 있다. 울진의 산과 바다는 그의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로 녹아 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대중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일각에서는 작가가 생전에 거주했던 서울 서초구나 이중섭미술관과 김창열미술관 등이 있는 제주도를 건립 후보지로 추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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