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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고기인가, 임금님의 별식인가… 여름 민어[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백성의 고기인가, 임금님의 별식인가
머리끝부터 꼬리까지 맛있는 대물, 여름의 상징 민어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민어의 이름에는 왜 백성 민(民)자가 붙었을까. 예전에는 민어가 많이 잡혀서 일반 백성들도 먹을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민어라고 불렸다고 이야기가 있다. 그럴 듯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여름이 제철이 민어를 그 옛날에 내륙으로 실어 나를 재간이 있었을 리 없고, 보존을 위해 말린 민어는 엄청난 고가였을 테니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민어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산어보〉를 펼치면 첫 번째로 석수어라는 물고기가 나오고, 두 번째로 면어(鮸魚)가 나온다.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길이는 약 4~5자 정도. 몸은 약간 둥글고 색깔은 황백색, 등은 청흑색으로 비늘과 입이 크다. 맛은 담백하면서도 달며, 익힌 것과 날 것 모두 좋지만 말린 것이 사람 몸에 더 이롭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들 수 있다. (중략) 신안 북쪽에서는 5~6월에 그물로 잡고, 6~7월에는 낚시로 잡는다. 알집의 길이는 2자가량이고, 절임과 어포 모두 맛있다. 어린 것은 속칭 암치어라고 한다.’

대개 한 자는 30.3cm지만 이 책에 나오는 한 자는 23.1cm 정도의 주척(周尺)이니 4~5자면 대략 1m 안팎의 크기다. 본래 면어(鮸魚)는 큰 조기를 가리키는 한자지만, 사실은 민(民)과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민어를 면어라고 부르다가 이 이름이 그대로 『자산어보』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니 ‘백성의 고기’라는 뜻의 물고기는 아니었다. 민어 한 마리를 잡으면 온 식구가 포식할 수 있는 고기인 것은 맞지만, 민어 역시 물 위로 건지면 즉시 죽는 어종이다 보니 산지 밖에서는 맛보기 힘든 고기였다. 그러던 것이 냉장기술의 발달과 함께 온 국민이 그 맛을 알게 되면서 각광받는 여름 음식이 되었으니 어쩌면 민어(民魚)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랄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래서 뜨거운 여름날, 민어 맛을 보러 목포로 향했다. 엄밀히 말하면 최대의 민어 산지는 전남 신안이지만, 일단 잡힌 민어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이 바로 목포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민어는 어떻게 먹을 때 가장 맛있을까. 물론 맛이라는 것이 개인 취향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보니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민어는 큰 생선이기 때문에 방어, 참치 같은 다른 큰 생선들과 마찬가지로 부위에 따라 조금씩 맛이 다르다. 민어 회 옹호자들은 뱃살을 최고로 치는 경우가 많다. 민어 뱃살은 부드럽고 담백해서, 회를 떠 놓고 그냥 소금만 찍어 먹어도 전혀 부담이 없다. 순수한 살과 지방의 맛. 그냥 간장, 파와 마늘 깨가 들어간 양념간장, 된장을 베이스로 한 막장 등 무엇에 찍어 먹어도 부담이 없다. 비린 맛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물론 바로 저 맛 때문에 민어는 회로 먹을 때 가장 적합한 생선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회 맛에는 ‘살 맛’ 뿐만 아니라 ‘씹는 맛’도 분명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 씹는 맛 부분에서 민어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이 민어 살의 부드러움과 적절히 함유된 지방의 맛은 익혔을 때 제대로 발휘된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직화의 형태보다 전의 형태로 훨씬 익숙하다. 흰살 생선으로 부치는 전을 싫어하는 한국인은 아마 없을 터. 대개는 동태나 생태가 생선전의 재료로 널리 쓰이지만 역시 그중 최고는 민어전이다. 계란물과 함께 적절히 기름에 지져진 민어전의 맛은 명불허전. 민어회를 몇 점 먹던 백종원 대표는 대부분의 횟감을 전 재료로 투입해버렸다. “민어 한 마리는 회로 먹으면 10인분도 나오겠지만, 전으로 부치면 나는 한 마리 다 먹을 수도 있어.”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물론 회와 전 사이에 데친 부레가 있다. 역시 민어 마니아들 중에는 민어 한 마리를 다 먹어도 부레를 못 먹으면 안 먹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민어 몸속에서 부력을 조절하는 공기주머니 역할을 하는 부레에는 원래 젤라틴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부레를 모아 아교풀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그래서 물에 데치면 쫄깃함은 물론, 감칠맛까지 느껴진다. 이 부레는 자연산 민어에 잘 발달해 있어 자연산과 중국산 양식(국산 민어와는 미묘하게 다르다)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도 쓰인다. 부레가 너무 작거나 찌그러져 있으면 양식일 가능성이 있다.

민어 회를 먹다가 담백한 맛에 질릴 때, 민어 전을 먹다가 느끼한 맛에 질릴 때 부레는 중간의 휴식 재료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민어를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찜기에 찐 뒤 간장에 설탕 마늘 파 생강 고추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위에 뿌려 먹는 민어찜도 별미지만 생민어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어쨌든 회, 전, 찜 다 먹었어도 탕이 빠지면 서운한 게 한국인의 정서. 민어로 탕을 끓일 때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맑은탕과 매운탕에서 취향이 또 한 번 갈린다. 엄밀히 말하면 맑은탕은 없다. 민어 머리와 뼈를 넣고 한참을 끓이면, 뚜껑을 열고 깜짝 놀란다. 분명히 생선을 넣고 끓였는데 설렁탕이 우러나 있기 때문. 그만치 민어 머리와 내장, 뼈에서는 뽀얀 고기 육수 같은 국물이 나온다. 물론 먹으면 소뼈 설렁탕과는 전혀 다른, 개운하면서 풍성한 국물 맛을 느낄 수 있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민어편. 인터넷 캡처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일단 생선을 넣고 끓였으면 빨간 양념으로 한겹 둘러야 맛이 난다는 분도 적지 않다. 민어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할 수는 없다는 공정파. 그런데 백종원 대표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묵은지를 넣고 끓이는 민어 묵은지 탕이 별미라는 것이다. 민어를 맑은탕으로 먹었을 때 느껴지는, 생선국치고는 좀 심하다 싶은 두툼한 맛을 김치를 넣어 중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중화’에 그치는 것인지, 김치맛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야 할 듯.

백성들이 먹을 수 있었든 아니든, 지금 민어는 온 국민의 여름 건강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뜨거운 햇살이 수온을 높이면 서서히 민어들이 수면 가까이 올라온다. 다들 민어 많이 드시고 더위 안 타는 여름 맞으시길.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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