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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해 키워드 30] <한류> 중국에 한국의 문화정서를 전할 '한국통(韓國通)'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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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韓中) 수교 30년을 회고하며 우리는 양국이 상호 이해와 인식 면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하고 있다. 정치경제 분야를 차치하고 민간교류만 놓고 보더라도 두 나라는 확실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H.O.T의 베이징 공연(2000)을 필두로 선보인 한류(韓流)는 2005년 대장금(2005)이 중국 대륙서 상영되면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한번 달궈진 한류의 열기는 시진핑 정부 초기에도 식을 줄을 몰랐다.

2006년 5월 10일, 아시아나항공은 보잉767 항공기에 인기 TV드라마 '대장금'의 사진을 붙인 '대장금호'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1년간 운항한다. [사진 중앙포토]

2006년 5월 10일, 아시아나항공은 보잉767 항공기에 인기 TV드라마 '대장금'의 사진을 붙인 '대장금호'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1년간 운항한다. [사진 중앙포토]

중국서 한류가 유행하기 전, 대륙의 영화는 일찌감치 한국 영화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1988)과 ‘홍등’(1991)은 대륙의 신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책으로만 희미하게 접했던 마오 시절의 역사는 천카이거의 ‘패왕별희’(1993)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한중수교(1992)로 대륙의 문이 열리자 한국인들은 동경과 환희의 안경을 쓰고 중국으로 달려갔다.

왼쪽부터 붉은 수수밭, 홍등, 패왕별희 영화 포스터

왼쪽부터 붉은 수수밭, 홍등, 패왕별희 영화 포스터

통계로 잡히진 않았지만, 수교 이후 중국인들이 DVD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한국의 정보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중국서 상영되지도 않은 ‘엽기적인 그녀’, 강재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는 당시 중국 청년층과 매니아층을 사로잡으며 경이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다. 한류 콘텐츠는 중국서 오랜 기간 하나의 문화신드롬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례는 한류가 중국인의 문화심층부를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착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중국 출판시장의 현주소를 보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발견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류의 위세는 지난 30년간 중국서 ‘대중문화’란 울타리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인의 ‘한류’ 인식은 한국 대중문화를 패스트푸드처럼 소비하고 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냉정한 현실은 중국인의 한류 사랑이 한국 고급문화의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았는 사실이다. 한국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작품이 중국서 다소 소개되었지만, 일회성 전람회처럼 반짝하였을 뿐 지속적인 힘을 받거나 뿌리 내리지 못했다.

반면 한국인의 중국 사랑은 루쉰(魯迅) 저작의 번역본만 봐도 알 수 있다. 《아Q정전》의 한역본(韓譯本)은 50여 종이 넘는다. 한국학자들은 루쉰이 중국에서 ‘도의 지도리’(道樞)와 같이 경계를 넘나드는, 좌익문단서도 찬사를 받고 자유주의 지식인에게도 무한 영감을 불어넣는, 독보적 인물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아Q정전》의 한역본(韓譯本)들

《아Q정전》의 한역본(韓譯本)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근대시기 한국 보수교회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좌파지식계도 추앙해 마지않았던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중국 학계에서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일제강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찬사를 받은, 도의 지도리 같이 한국 지성계에 영감을 주는 이 책은 외국어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기울어진 번역이란 운동장의 현주소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한중 교류의 역사에서, ‘번역’을 통한 상호 문명 인식은 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문명번역’을 번역의 최고봉으로 친다면, 조선시대 한국은 중화문명의 번역을 성실히 수행했다. 당시 번역은 철학, 문학, 정치, 경제, 법률 등 전 영역을 총망라했다.

퇴계 선생이 편집한 《주자서절요》는 주자(朱子) 서신을 취사선택하여 그 정수를 뽑아낸 것으로, 훗날 일본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성학십도》는 남송 주자학을 조선유학의 시각서 그림으로 재해석해낸 명작이었다.

근대 냉전시기 잠시 주춤했던 한국의 중국 인식은 한중수교 이후 곧바로 중국학 열풍을 맞았다. 거의 모든 대학교에 중국학과가 설립되었고, 중국서 넘어온 인문, 사회과학 책들이 속속 번역되어 서점가를 뒤덮었다.

짧은 기간 내에 한국의 중국 인식이 전면적 수준에 도달한 데에는 두터운 층을 형성했던 ‘중한(中韓) 번역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중국을 뜨겁게 사랑한 이 번역가 그룹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중국통(中國通)’들이었다. 위대한 번역가가 되기 위해선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선별할 줄 아는 매의 눈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정통하고 양국을 아는 지식도 사통팔달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당대 중한 번역가 그룹은 중국에 대한 사랑, 양국 언어의 이해, 관련 지식의 장악에서 모두 최고 수준에 달한 자들이었다. 번역가 김태성 선생의 경우, 130여 권에 달하는 중국 명저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가장 첨예한 시대정신을 좇고자 했던 그는 류짜이푸, 리쩌허우, 옌롄커의 저서를 수소문해 번역했다. 전무후무한 ‘중한 번역’의 산 역사다.

그렇다면 한국 명저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현황은 어떠한가? 아쉽게도 오늘 중국에는 양국 언어에 정통하고 최고 수준의 지식을 갖춘 ‘한국통(韓國通)’이 상대적으로 희소하다.

한류에 대한 열광이 땅 밑으로 깊게 스며들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한 철 장사 끝나면 좌판 거두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수교이래 한국 도서의 중국어 번역은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 한국 기반의 단체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를 통해 윤동주, 김소월 시집을 비롯해 박경리, 이청준, 공지영, 한강 등의 소설이 번역되었다. 불모지에 번역의 루트를 개척한 이 단체들의 공로는 매우 크다.

그러나 번역의 확장성과 지속성이란 시각서 보면, 중역(中譯)된 한국도서가 중국 출판계에서 스테디셀러로 등극하는 사례는 매우 적었고, 하나의 문화조류로 승화된 경우도 드물었다. 중국 출판계는 첨단지식 분야에선 유럽과 미국을 주시했고, 문학작품으론 일본소설에 관심을 보였다. 중국 출판계에서 한국학은 여전히 그 존재감이 미약한 상태다.

한국학이 ‘문명번역’ 수준의 대상이 되려면, 과거 ‘사단칠정’이란 주자학의 논제를 놓고 300년 넘게 토론했던 한국 유림(儒林)에 비견될만한, 중국 지성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을 주유하며 도의 지도리를 찾고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주옥같은 작품을 발굴할 눈을 지닌 중국인 번역가가 나와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법화경》을 한역(漢譯)한 쿠마라지바(鳩摩羅什), 장안에 역경원(譯經院)을 세워 수많은 인도불경을 번역한 현장(玄奘)에 버금가는 이가 한국학에 눈길을 돌리는 날이 오기를 대망한다.

글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겸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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