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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의 'K반도체' 때도 안됐다…尹 '반도체 인력' 쉽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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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용산에서 날라온 불똥이 여의도로 번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국무회의에서 ‘대로(大怒)’하면서까지 강조했던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 얘기다. 이틀만인 9일 국민의힘은 ‘반도체산업지원특별위원회’(가칭) 설치를 발표하고 관련 강의를 여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이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특위 구성을 공론화했다. 성 의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경쟁력강화 및 보호특별법)을 준비하며 축적된 자료가 많다”며 “과거 논의를 참고해 빠른 시일 내 법안을 내놓겠다”고 자신했다. 또 “특위에 민간 전문가를 영입해 실질적인 개선책을 발의 내용에 포함시키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14일 열릴 의원총회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초빙해 반도체 특강도 개최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낸 이 장관은 7일 윤 대통령이 주관한 국무회의에서도 ‘반도체의 이해 및 전략적 가치’를 주제로 20분가량 특강을 했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9일 교육부를 찾아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면 과거처럼 돈을 퍼붓는 것이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는 전략이 가장 핵심”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이 마치 '불난 호떡집'과 같은 분위기가 됐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앞서 윤 대통령은 '반도체 인력 10만명 양성'을 공약에 포함시키는 등 관련 정책을 거듭 강조해왔다. 취임사에서도 과학기술 혁신을 언급했고 지난달 20일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반도체 학과 확충의 어려움을 거론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강하게 질타한 사실까지 보도되자 당정이 움직인 것이다.

이렇듯 반도체 정책에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기까진 난제가 많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교육부를 질책하며 강력하게 주문한 반도체 학과 증원 문제가 그렇다. 왜 그럴까.

이 문제는 지방대 생존 문제와 직결된 까닭에 1차원적인 접근으론 해결이 힘들다. 당장 지난 1월 국회에서 통과된 반도체특별법 논의 과정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를 강조하기에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해 ‘K반도체 전략’을 내세웠고 국회에서는 여야는 관련 특위를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 시설로 지정돼 교육부로부터 정원 배정을 제한 받는다. 당시 국민의힘은 유의동 의원의 법안을 통해 첨단 학과 정원은 제한 규정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포함시켰지만, 이는 민주당과 정부의 반대로 제외됐다.

지난해 11월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 회의록에는 박진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제1차관이 “지역 발전을 고려해 수도권 대학 정원 특례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한 내용이 포함돼있다.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수도권 대학이 정원을 늘리면 수해 째 미달 사태를 겪어온 지방대로서는 신입생 모집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교육부와 민주당의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문재인 청와대는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그럼에도 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증원 문제만큼은 청와대 의도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야당이 된 민주당 입장에서 윤 대통령이 불씨를 당긴 반도체 규제 완화 정책에 협조하더라도 정원 문제만큼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민주당은 “수도권 대학들의 정원규제를 풀겠다는 단순한 논리는 지방 대학의 소멸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일 뿐”(유기홍 민주당 의원)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시민단체도 거들었다. 균형발전국민포럼은 성명서를 통해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린다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문제에 소극적인 의원들이 있을 수 있다. 지역구에 지방대가 있는 의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큰 대학가 주변 상인 단체 등의 반대로 인해 선뜻 법안에 찬성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각 대학의 국고 지원 여부가 결정되는 교육부 대학기본역량진단 시즌만 되면 지방대의 민원이 폭증하는데, 이번 수도권 대학 증원 국면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한덕수 국무총리는 9일 국정 현안 점검 조정회의에서 “인재 양성의 기본적인 골격은 수도권과 지방에 거의 비슷한 숫자로 증원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당에선 여야 합의가 힘들 경우 ‘우회로’를 통해서라도 정원 확충을 못 박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르면 수도권 정원 확충을 하려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가를 하면 된다. 다만 이를 통해 대학이 정원을 늘린 전례는 없었다. 교육부 역시 2020년 중도 이탈한 결손 인원, 편입학 이후 남은 자리를 활용해 4차 산업 첨단분야 입학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적이 있다.

제21대 국회 전반기에 교육위원장을 맡았던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권이 교체된 게 그나마 우리에게 유리한 지점”이라면서 “관련 부처인 교육부 등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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