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작품 1초만에 완판…왜 이리 핫할까, 샘바이펜 페이크 아트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2022.06.08 05:01

업데이트 2022.06.08 10:51

20세기 초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수법 중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어요. 친숙한 사물, 관념을 특수화해 전에 없던 낯선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장치죠. '낯익은 것'들로부터 '낯선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린 그것이 원래 알고 있던 것임에도 거리감을 느끼고 집중하게 됩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과정에서 추가되는 새로운 해석에 주목하기 때문이에요.

일러스트 아트 세계에서도 일상의 모습을 위트 있는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실력이 탁월해 사랑받는 작가가 있습니다. 미쉐린, BIC, 오뚜기 등 친숙한 브랜드의 캐릭터부터 길가에 활짝 핀 꽃과 표지판까지, 이 사람에겐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누군지 아시겠다고요? 맞아요 '나 혼자 산다'에 나왔던 그 분. 지금 가장 핫한 일러스트레이터, '샘바이펜'(SAMBYPEN)이라는 활동명으로 잘 알려진 김세동 작가예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매일 지나가도 새로운 것들, 자칫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포착해서 그림을 그려요. 꽃, 표지판 같은 것들이요. 해석보다는 직관적으로 보고 즐기는 게 좋아요."

김세동 작가(샘바이펜) [사진 Speeker]

김세동 작가(샘바이펜) [사진 Speeker]

1992년생으로 올해 31살인 김 작가. 학창시절을 유럽과 미국에서 보낸 그는 지금 MZ세대가 가장 주목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했어요. 군데군데 알록달록한 색감을 잘 쓰기도 하지만, 익숙한 소재를 재료로 삼아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강점이 있죠. 친숙한 영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하는 데도 능숙하고요. '미쉐린 맨'으로 알려진 비벤덤을 재해석한 작품이 대표작이에요.

지난 201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김 작가의 작품은 내놨다 하면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요. 지난달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2022'에 출품한 7점도 모두 단 1초만에 완판됐죠. 기업들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아요. 지난해엔 글로벌 패션 하우스 브랜드인 MCM과 협업한 '리미티트 에디트 컬렉션'이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요. 최근엔 줄 서도 못 구한다는 '원소주'의 한정판 패키지를 디자인했어요.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샘바이펜 인스타그램]

'상업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익숙한 것들이 미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페이크 아트'(FAKE ART)라고 불러요. 순수 미술(Fine Art)과 대비되는 개념이죠. "'순수 예술'이라는데, 진짜 순수한가요 그게? 전 그림 그리는 어린이들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핫할대로 핫해진 그가 이번엔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와 콜라보했어요. 꽃 모양의 자수와 리바이스를 형상화한 그래피티 페인팅을 리바이스 데님 트러커 자켓, 베트윙 로고 티셔츠, 501 데님, 스테이루즈쿨 진에 새겼죠.

리바이스가 김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희정 리바이스트라우스코리아 이사는 "국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Z세대의 주목도가 높은 샘바이펜이 제격이라 생각해 제안했다"며 "샘바이펜만의 그래피티 컬러감이 리바이스 데님과 꼭 어울릴 거 같았다"고 했어요.

지난 3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김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 누구보다 핫한 그,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엔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겸손함까지 갖췄더군요. 나만의 스타일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민의 과정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답니다.

비크닉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페인팅이랑 그래픽 디자인, 그래비티 작업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 샘바이펜이라고 합니다. 활동명 샘바이펜은 사실 인스타그램 닉네임인데, 이제는 활동명이 됐네요.

활동명 '샘바이펜'에 담긴 의미가 궁금해요.
10년 전쯤, 스무 살 쯤에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 HBA)란 브랜드가 있었어요. 지금의 오프화이트와 비슷한 느낌인데, 사람들이 잘 몰랐던 브랜드였거든요. 당시에 한국에선 아무도 입지 않는 HBA의 의류를 처음 사서 혼자 입고 다녔는데 그게 되게 좋았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제 성향이 반영된 HBA 브랜드의 이름을 패러디한 거죠. 그리고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모나미 펜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간부 휴대폰을 빌려서 (그림을) 촬영해서 SNS에 업로드하고 그랬습니다.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요즘 굉장히 핫한 아티스트인데.

원래 엄청 안 핫했었어요.(웃음) 그냥 계속 작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TV에도 출연하고. 인기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스물 여섯쯤에 나이키와 처음으로 협업했어요. 작업은 힘들지만 나이키라는 브랜드에서 (저를) 알아봐주고 연락해줬다는 점을 생각해서 그 때 '이 일을 계속 해도 되겠다'란 생각을 했어요.

아직도 그래피티가 생소하단 사람들이 많아요.
원래 그래피티를 주력으로 하진 않았어요. 처음엔 페인팅(회화)으로 시작했다가 영역을 확장한 겁니다. 친한 분들의 식당, 편집숍에서 연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어요. 그래피티란 영역이 되게 폐쇄적이거든요. 예전엔 그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작품 세계를) 표현한 건데, 이젠 반대로 (작품보다) 아티스트들이 더 폐쇄적인 느낌이에요. '그래피티를 하려면 작가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등의 암묵적인 룰이 있죠. 룰을 깨고 싶었습니다.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김세동 작가 [사진 정성룡 포토그래퍼]

리바이스와의 이번 협업에서 고려한 것은?

사실 깊은 의미보다는 어차피 (데님도) 소비되는 제품이니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어요. 골프를 오래했는데, 연습장을 갈 때 공원을 지나서 가요. 엄청 작은 길인데도 지나다보면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꽃이라든지, 표지판이라든지, 무심결에 지나치면 볼 수 없는 것들에서 새로운 느낌을 찾려고 해요. 그런 직관적인 느낌으로 작업해봤어요. 취향에 맞게 예쁘게 입고 재밌게 놀러다니셨으면 좋겠어요.

NFT에 작품을 등록할 계획은 없나요?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너무 다들 하니까 마음이 좀 그래서요. 좀 나중엔 할 수도 있겠어요. NFT 인기가 시들해지면요. 그 땐 사람들이 안 할 거니까요.(웃음)

앞으로 계획은?
하반기엔 개인전 준비로 바쁠 것 같아요. 개인전은 10월쯤 열 계획입니다. 기대해주세요.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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