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 그린워싱, 무조건 때리는 게 지구에 득일까?

중앙일보

입력 2022.05.18 07:00

안녕하세요. 비크닉 'Voice Matters' 김민정 기자입니다. 3주 전 보내 드린 뉴스레터에선 기후변화 대재앙을 막기 위해 실천하는 브랜드를 만나봤습니다. 모범답안 같은 편지를 보내놓고도 지난 3주를 아쉬움 속에 보냈습니다. 비크닉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공유하고 얘기 나누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미처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못다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려 합니다. 좀 더 나은 삶,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그린워싱입니다.

마케터 절반이 두려움에 떠는 그것

지난해 영국공인마케팅협회에서 마케터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습니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49%)가 이것을 하는데 큰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는데요. 바로 지속가능한 성장, 좁혀 말해 환경 이슈와 관련된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빚어질 수 있는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친환경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이 중 40%는 자신이 지속가능한 성장, 친환경을 논할 자질이 부족하다고도 했습니다. 자신감 결여는 다 이유가 있지요. 자질 부족을 이야기한 사람의 76%는 자신이 브랜드의 지속가능 성장을 논하고 있지만, 정작 관련 전문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국 사정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비자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고, 각국 규제는 더 날카롭게 정비되고 있습니다. 자칫 커뮤니케이션 오류나 전문성 결여로 신뢰감을 저버리면 의도가 있건 없건 소비자는 실망할 겁니다. 그린워싱 뭇매를 맞은 브랜드는 그나마 친환경인 척하느라 들이던 노력마저 포기할 우려가 크죠. 스테판 로에르케 세계광고주연맹 회장은 "환경에 관한 기업들의 주장을 의심하는 회의주의가 판치고 있다. 브랜드 마케터들은 그린워싱 논란이 일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며 "이런 교착상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대안 모색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 우려했습니다.

그린 워싱, 무조건 때려야 할까

지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만큼이나 그린워싱 논란도 뜨거웠습니다. 국제소비자보호집행기구네트워크(ICPEN)가 지난해 패션, 뷰티(화장품), 식음료 업체 500개 웹사이트를 무작위 조사한 결과, 40%가 소비자에게 혼란을 가져올 친환경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에코(eco)', '지속가능성' 등의 단어를 명확한 인과관계와 증거 없이 가져다 붙이거나, 설명을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둬 정보 전달을 모호하게 하고, 인증되지 않은 친환경 로고를 부착해 소비자를 호도하는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자연주의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초 '종이병(Paper bottle)' 때문에 뭇매를 맞았죠. SNS의 어느 환경보호 실천 커뮤니티에 소비자가 올린 글과 사진 때문인데요. 화장품 용기에는 'HELLO, I'M PAPER BOTTLE(안녕, 나는 종이 용기야)'라고 적혀 있지만, 종이를 해체하니 플라스틱병이 나와 크게 실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브랜드를 믿고 선택한 이들에게 충분히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사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종이병(Paper bottle) 내부. 사진=페이스북 커뮤니티 캡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종이병(Paper bottle) 내부. 사진=페이스북 커뮤니티 캡처

해당 제품은 겉면에 종이 라벨을 씌우고, 안은 재활용률이 높은 무색 PE(Polyethylene)로 만들었다는 게 제품 포장 박스와 홈페이지에 쓰여 있습니다. '기존 제품 대비 51.8% 플라스틱을 절감해 생산됐다'는 문구도 있고요. 분리배출 방법도 설명돼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패키지 강도를 보강하기 위해 종이를 쓴 건데요. '종이병'이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종이만으로 용기를 만들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거죠. 해당 브랜드 측도 미숙한 소통을 빠르게 인정했습니다.

종이병 분리수거 과정이 명시된 이니스프리 포장지. 사진=중앙일보

종이병 분리수거 과정이 명시된 이니스프리 포장지. 사진=중앙일보

이니스프리 측은 "화장품 용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논의하기 위해 매월 지속가능 협의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스틱을 덜 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죠.

눈속임의 의도가 있는 그린워싱은 당연히 비윤리적 행위이고 질타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미흡한 실수, 의도치 않은 결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실수를 바탕으로 더 발전된 행보를 약속하는 브랜드에는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린워싱이 환경과 관련한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는 단어가 된다면, 브랜드는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손을 놓을지도 모릅니다. 환경에는 가장 암담한 시나리오죠. 우리의 목표는 기후 대재앙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략하지 말고 전부 털어놓기

세계광고주연맹(WFA)은 지난달 브랜드가 어떻게 환경에 대한 신념, 주장을 소비자에게 신뢰감 있게 전할 수 있는지 6가지 원칙을 담은 가이드북을 처음으로 내놨는데요. 그중 세 번째 원칙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제품 성분(구성)에 관한 정보를 생략하지 말라. 시간과 공간이 부족하면 다른 방법으로 양질의 정보를 소비자한테 적절히 전달해야 한다."

불리한 정보는 숨기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환경을 위해 고민해온 그대로를 고객과 솔직하게 소통하라는 의미 아닐까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비즈니스 컨설턴트 마크 W. 셰퍼는『인간적인 브랜드가 살아남는다』(원제: Marketing Rebellion)에서 오늘날 마케터에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고객들이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 또는 제품의 이야기를 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완벽한 친환경이 아니면 어떤가요. 환경을 생각한다는 방향은 지키면서 실수하고 수정하며 성장해가는 브랜드가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 겁니다.

비크닉이 다뤄주면 좋을 브랜드의 목소리, 제보를 기다립니다~. Yes, Voice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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