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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의 ‘건보료 폭탄’ 줄이기…빚은 뺀다는데 5억 넘는 집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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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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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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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63)씨는 얼마 전 지인의 회사에 직원으로 올렸다. 실제로는 근무하지 않는 ‘위장 취업’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통장으로 받은 뒤 지인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 건강보험료 때문에 이런다. 김씨는 3년여 전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직장 건보료를 계속 냈다(임의계속가입제도). 그게 지역가입자로 전환할 때보다 보험료가 적어서다. 이후 3년 지나자 건보 지역가입자가 강제 전환되면서 건보료가 껑충 뛰었다. 경기도와 서울의 집에 붙는 건보료 때문이었다. 김씨는 “재산 건보료만 30만원 넘었고, 소득·차 건보료를 더하니 부담이 너무 컸다”며 “지인 회사 직원(직장가입자)으로 올리면서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은퇴자는 재산 건보료 때문에 괴롭다. 직장인은 안 내지만 지역가입자는 낸다. 최근엔 집값 폭등 때문에 더 괴롭다. 올 11월 재산 건보료 정기 조정 때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사회보험 방식의 건보를 운영하는 나라 중 한국은 재산에 건보료를 매기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위장 취업’이 옳은 건 아니지만, 제도가 불법·편법을 조장하는 면이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0대 건보 지역가입자는 250만 명이다. 베이비부머가 속속 은퇴하면서 2017년보다 39% 늘었다.

건보료 주택부채공제 9월 시행
1주택·무주택에 최대 5000만원
서울아파트 절반가량 해당 안돼
“효과 미미, 재산비중 더 낮춰야”

부채공제 도입 국정과제 포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부동산 정책 실패는 정부가 저질러 놓고 왜 가만히 있는 국민이 세금폭탄과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아야 하느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면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정부는 2018년 7월에 이어 오는 9월 건보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을 시행한다. 윤 대통령은 110대 국정과제에서 재산공제 확대, 피부양자 기준 강화 등 부과체계 개편을 실시하고, 실거주 목적 주택 관련 부채는 보험료 부과 대상 재산에서 공제하겠다고 명시했다. 부채 공제는 9월 건보료부터 시행한다. “재산에 건보료가 웬 말이냐. 왜 부채는 빼주지 않느냐”는 불만을 얼마나 잠재울지 관심거리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국민건강보험 노동조합은 지난 3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딱 맞는다”며 부채공제 철회를 요구했다. 시행도 안 한 제도를 없애자는 이유가 뭘까. 우선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실거주 목적의 1세대 1주택(주거용 오피스텔 포함) 또는 1세대 무주택자가 대상이다. 대출일이 주택 취득일(전입일) 전후 각각 3개월 이내에 들어야 한다. 공시가격(분양가)이나 보증금 5억원 이하만 해당한다. 대출금(잔액)을 전액 공제하지 않는다. 공정시장가액 비율(60%)만큼만 적용하되 최대 공제액은 5000만원이다.

가령 공시가격 5억원 아파트의 대출금이 1억원이라면 공제액이 6000만원(1억x60%)이지만 상한선 5000만원만 공제한다. 무주택자의 보증금·월세 대출금은 30%만 적용한다. 대출금은 은행·저축은행·신협 등 협동조합·보험회사·주택금융공사·새마을금고 등에서 빌린 돈을 말한다. 대부회사도 해당한다. 마이너스 통장 대출, 신용대출, 지인에게 빌린 돈은 인정하지 않는다.

2억 대출 있으면 9030원 경감

구체적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공시가 5억원 아파트에 대출금 2억원이 있다면.
“해당한다. 지금은 재산 건보료가 13만9810원이다. 9월에는 대출금 최대 공제액(5000만원)을 인정받아 이를 제하고 건보료를 산정하면 13만780원이다. 9030원(6.5%) 줄어든다.”
공시가 5500만원의 집에 대출금이 8330만원이면.
“지금은 5만5000원의 건보료를 내지만 9월에는 0원이 된다.”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00만원의 아파트에 5000만원의 대출이 있다면.
“해당한다. 월세를 보증금으로 환산해 건보료를 매긴다. 지금은 6만5700원이다. 9월에는 6만360원으로 5340원(8.1%) 줄어든다.”
3년 전 5억원(대출 3억원)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지금 공시가격은 7억원이다.
“공제 신청 시점 공시가격이 기준이어서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해 서울의 공동주택 공시가격 중윗값(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값)이 4억43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는 해당하지 않는다. 5억원 언저리이면 경감액이 1만원 채 안 된다. 다만 공시가격이 낮을수록 혜택이 커진다. 최대 5만5000원이 줄어든다. 지역가입자(859만 세대) 중 515만 세대가 재산 건보료를 낸다. 이 중 부채가 있는 세대 중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돈을 빌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집을 사지도 못한다” “빚 없이 집 산 사람을 역차별한다”는 불평이 나온다. 조건이 복잡해 민원이 적지 않게 발생할 전망이다. 또 전세를 옮길 때마다 건보료를 따져야 한다. 1만여개 대부업체의 대출금이 전산 연계되지 않으면 서류로 입증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9월 금융부채 공제와 재산 공제액 확대(500만~1350만원→5000만원)를 같이 시행하면 경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보 노조는 “재산 공제를 5000만원 이상으로 올리고 1세대 1주택자는 추가 공제해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 대신 부채공제는 없애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