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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검수완박'...검사의 '지게꾼' 역할 재평가돼야 한다 [Law談 스페셜-지은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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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두 번의 수사관으로서의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경찰로서의 수사였고, 두 번째는 검사로서의 수사였다. 지금은 경찰과 검사를 모두 그만두고 학교에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니 두 가지 경험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처리로 경찰의 역할이 대폭 확대된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관계자가 드나드는 모습. 뉴스1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처리로 경찰의 역할이 대폭 확대된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관계자가 드나드는 모습. 뉴스1

경찰관으로 처음 접했던 수사 업무는 내게 보람이나 자부심보다 두려움으로 남았다. 경찰 수사 10년이면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사 업무는 항상 누군가를 의심하게 한다. 증거가 있음에도 부인하는 피의자를 볼 때마다 머리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고 생각하지만, 나의 유죄 확신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유죄 확신은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편향을 키우기도 한다. 유능한 수사관이 될수록 이런 편견과 확신이 내 수사 기록 곳곳에 묻어났다.

모든 히어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이 악당을 응징하는 부분이다. 평생 모든 돈을 날린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정, 이를 뒷받침하는 상당한 수준의 증거가 만나면 수사관은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 보장이라는 수사의 목적을 잠시 망각하고 악당을 응징하는 히어로가 되려고 한다. 참혹한 범죄 현장을 앞에 두고 수사관의 객관 의무를 상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수사관이 아닌 히어로가 되고 싶은 나의 인간적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어 준 존재는 바로 검사였다.

검사는 기록으로 사건을 접하며, 형사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본 검사의 새로운 해석과 의견은 히어로가 되려는 나에게 한 번씩 경종을 울려주었고, 수사기관의 객관 의무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솔직히 검사의 직언은 껄끄럽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유죄 확증 편향의 위험성을 안다면 그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할 수밖에 없고, 결론적으로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두 번째 수사의 경험은 검사로서의 수사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후 검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경찰에서 수사하며 검사의 객관 의무, 감시자의 역할이 수사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 발견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검찰에는 ‘지게꾼이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경찰의 사건을 법원에 나르기만 하는 검사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형사부 검사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아무리 꼼꼼하고 성실히 검토해 통제하더라도, 추가 인지나 공범의 추가 입건을 통한 직접 수사가 없다면 ‘지게꾼’이냐는 핀잔을 받았다. 지게를 벗어 던지고 직접수사에 특기를 보이면 인지부서에 발탁돼 많은 검사의 부러움을 샀다.

검사를 하면서 항상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경찰의 수사는 검사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검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찰보다 훨씬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검사의 수사는 누가 객관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까? 단지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검사도 인간인 이상, 확증 편향을 스스로 이겨낼 수는 없다. 유죄의 확신을 품고 직접 수사하는 검사는 같은 상황에 놓인 경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경찰에게는 검사라는 감시자가 있다는 점이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검사 선서가 걸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로비에 검사 선서가 걸려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초 대한변호사협회가 공개한 검사 평가에 따르면, 사건 송치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기소하거나, 참고인 등을 설득하여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를 철회하게 한다거나,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하여 피해자의 이의 제기가 없었는데도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여 변호사가 따지자 “검사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검사가 조사할 때는 이유가 있다”라고 하는 등 고압적이고 ‘갑질’을 하는 검사가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경찰의 수사를 검사가 통제하는 것처럼 검찰에 대한 통제 또는 견제도 필요하다.

최근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속칭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인해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형사사법의 목표인 실체적 진실과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검사의 직접수사는 제3자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면 객관적 관청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지게꾼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어떤 사건을 지게에 올릴 것인지, 어떤 사건을 경찰에게 돌려보낼 것인지 검토하고, 확인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고, 경찰의 수사를 통제하는 역할이 바로 충실한 지게꾼의 역할이 될 것이다.

로담(Law談) 스페셜 기고

다양한 경력의 전문가가 법조 관련 주요 사안을 알기 쉽고 깊이 있게 다루는 기고 시리즈입니다. 중앙일보 ‘로담(Law談) 칼럼’은 열려 있습니다. 연재 필진 이외 각 분야 전문가 분들이 현안에 대한 법률가적 시각을 소개하겠습니다. 법이 국민에 바르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반론(反論)과 토론도 환영합니다.

지은석 교수.

지은석 교수.

※지은석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전 사법경찰관/전 안산지청·영월지청·대구지검 검사. 전 삼성 미래전략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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