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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전시 상황"尹,'처칠-애틀리'모델을 화두로 던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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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戰時) 상황’에 준한다는 위기 의식, 근원적 해결책이자 신념으로서의 의회주의, 그걸 구현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 세가지에 방점을 찍었다.

 16일 오전 10시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윤 대통령은 59조 4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의 국회 처리를 요청하면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의회주의 원리에 따라 풀어가는 첫걸음”이라고 표현했다. 추경을 계기로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섰지만, 그가 전한 키워드는 의회주의와 초당적 협력이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모두에 “우리가 직면한 대내외 여건이 매우 어렵다”며 위기에 처한 국내 상황을 나열했다. 정치·경제·군사적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지정학적 갈등,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 방역 위기에 따른 소상공인의 피해 등을 언급한 윤 대통령은 특히 “북한은 날이 갈수록 핵무기 체계를 고도화하면서 핵무기 투발 수단인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며 “올해 들어서만 16번째 (미사일) 도발이며 핵 실험을 준비하는 정황도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형식적 평화가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남북 간 신뢰 구축이 선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 윤 대통령은 곧장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주에 방한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IPEF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공급망 안정화 방안뿐 아니라 디지털 경제와 탄소 중립 등 다양한 경제 안보에 관련된 사안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제안한 IPEF는 디지털·공급망·청정에너지 등의 신(新)통상 의제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포괄적 경제 협력 구상으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많다. 윤 대통령이 공식 연설에서 IPEF를 거론한 것은 21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테마로 경제안보가 떠오른 것과 직결돼있다. 대통령실은 그간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화두가 경제안보로, 중국을 자극하지 않되 안보 중심의 한·미 동맹을 경제 이슈를 포함한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마친 후 박병석 의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마친 후 박병석 의장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 대통령이 그러면서 꺼낸 예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의 전시(戰時) 연립 내각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초당적 협력’의 모델로 제시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윈스턴 처칠과 클레멘트 애틀리는 2차 대전 직전 영국 정치에서 경쟁하던 관계였다. 보수당의 처칠과 노동당의 애틀리는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2차 세계대전을 기해 꾸려진 전시 연립내각(1940~1945년)에선 피아 구분이 따로 없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전시상황’에 빗댄 윤 대통령은 이 '처칠-애틀리' 모델을 협치의 이상형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한 방송에 출연해서도 존경하는 인물로 처칠을 꼽으면서 그 이유로 “확고한 비전을 갖고 국민과 함께 어려움을 돌파했고, 무너질 뻔한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시켰다”고 말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라거나 “의회주의는 국정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이라는 발언도 처칠-애틀리 협치 모델로 난국을 헤쳐나가자는 메시지를 야당에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14분간 읽어내린 3227자 연설문에서 윤 대통령은 ‘경제’를 10번, ‘위기’ 9번 언급했다. “국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몸을 낮춘 윤 대통령은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을 어느 때보다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하면 어떤 어려운 국가적 난제라도 잘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2.05.16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2.05.16

 의회주의와 초당적 협력은 소수 여당의 대통령으로선 숙명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170여석 야당의 협조 없인 단 하나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정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연금·노동·교육 등 개혁 분야를 차례로 나열한 뒤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지만, 이 또한 야당의 협조가 필요조건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민주당 상징색인 파란색에 가까운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연설한 뒤 민주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악수를 청한 것도 협치의 관점에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메시지도 발신했다.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 북한의 코로나 19 상황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북한 당국이 호응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단 뒤 “코로나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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