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이 진화를 거듭해 도달한 그것, 꽃게무침[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07:30

게장이 진화를 거듭해 도달한 그것, 꽃게무침
봄철 꽃게의 제맛을 충분히 느끼려거든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지난가을, 이미 꽃게 이야기를 했다. 안다. 그리고 꽃게 철은 1년에 두 번 온다는 이야기도 했다. 복습을 하자면, 10월~12월에는 수컷 꽃게가, 그리고 봄을 맞은 3~5월에는 암컷 꽃게가 제철이다. 물론 요즘은 선동 기술이 발달해 1년 내내 꽃게를 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지만, 생물로 먹으려면 저 일정을 외워 두는 것이 좋다.

선동이라고 하면 몇몇 분들은 선동(鮮凍), 즉 신선하게 얼린다는 뜻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다. 사실 어시장에서 쓰는 선동이라는 말은 잡자마자 배에서 얼린다(船凍)는 뜻이다. 싱싱할 때 급속 냉동해서 필요할 때 녹여 먹는 것이니 신선 냉동의 준말이라 해도 통하긴 하겠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캡처

꽃게의 경우, 이 선동 기술은 꽃게 요리 전문 식당의 운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만약 선동 기술이 없었다면, 그 많은 꽃게탕집과 게장 전문점들이 1년 내내 알밴 암꽃게를 손님상에 내놓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선동한 게를 해동해 음식 재료로 쓰는 기술도 날로 발달해 어쩌다 있는 비린 맛 같은 것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사실 우리 조상들도 게를 무척 좋아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게는 내륙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바닷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게는 당연히 젓갈의 형태거나 말린 게다리 포 정도. 다리에 살이 많은 대게나 왕게류는 그 다리 살을 말려 유통이 기능했지만, 다리 살이 부실한 꽃게나 그보다 더 작은 참게의 경우엔 그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장으로 담그는 것. 어부들이 배 위에서 게딱지를 뜯고 바닷물을 부어 만들기 시작한 염장게장은 풍미 강화를 위해 간장에 푹 담그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이 게장은 서해 산지에서 서울까지도 배달 가능한 음식이 되었다. 충남 태안의 해안유물박물관에 가 보면 당시 안면도 앞바다에 침몰한 배 안에서 발견된 게장 배달 항아리와 거기 붙어 있던 인식표가 남아 있다. 내용물과 주소, 받는 이가 적혀 있어 21세기의 택배 전표와 다를 게 없다(관련 내용은 졸저 『양식의 양식』에 자세히 담겨 있다). 오늘날의 우리가 이 인식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게장을 주문한 사람은 맛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 새삼 안타깝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게장은 당시의 게장(혹은 게젓)과 엄밀히 말해 다른 음식이다. 일단 염도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간장게장은 약간 쿰쿰해질 때까지 익혀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냉동/냉장 기술이 발달하며 점점 덜 짠 게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고, 발효의 맛 대신 싱싱한 게에 간장을 부어 바로 먹는 음식 쪽으로 변해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 식당들이 팔고 있는 간장게장은 전통적인 한국식 게젓/게장에 비해 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뿌덩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짠맛과 발효된 맛을 포기한 대신 달콤한 맛이 강화되어 게장은 좀 더 보편적인 반찬으로 진화했다.

근래 목포 사람들은 여기서 또 한 번 변형된 음식을 만들어 냈다. 바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꽃게무침이다. 형상을 보나 맛을 보나, 게살무침은 양념게장의 직계 자손이라 할 수 있다. 본래는 양념게장도 간장게장처럼 양념장에 게를 푹 담그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지금도 충남 해안 지역에서 ‘무젓’이나 ‘그이젓’이라는 이름으로 담가 먹는 충청도식 양념게장을 보면 국물이 그득하다),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점점 국물이 없어지고, 현재의 질척한 양념게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간장게장이든, 양념게장이든, 사실 제대로 즐기려면 귀찮음을 극복해야 한다. 게 껍질을 깨뜨리고, 쭉쭉 빨아먹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장게장을 손으로 짜서 밥 위에 뿌려 주는 게알비빔밥이라는 메뉴도 등장했다. 하지만 목포 사람들은 여기서 발상의 전환에 도달했다. 어차피 손님이 손을 더럽히지 않고 게장 맛을 보는 게 목적이라면, 게살을 먼저 뽑아내고 양념을 나중에 해도 되는 것 아닐까?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그렇게 해서 꽃게무침, 혹은 게살무침이 탄생했다. 꽃게무침은 언 채로 짜낸 게살을 새빨간 양념에 무쳐 바로 먹는 음식이다. 숙성의 느낌은 전혀 없고, 싱싱한 게살과 양념의 밸런스가 핵심인데,  단 살이 무르면 짜내는 공정이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에 언 상태의 수컷 꽃게만을 사용한다. 한국인이 정말로 좋아하는 매콤단짠 양념에 버무린 게살을 껍질 까는 수고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게살무침은 삽시간에 히트 메뉴가 되었고, 최근에는 ‘목포 9미’의 하나로 꼽히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이상 꽃게무침의 족보 캐기가 끝났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하면 기본적인 밑반찬과 사발에 담긴 밥, 그리고 꽃게무침이 담긴 접시가 상 위에 놓인다. 한 그릇은 보통 2인분. 대화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누가 꽃게무침을 한 숟갈 더 퍼갈세라 약간의 신경전이 있을 뿐이다. 물론 참기름 몇 방울을 뿌리는 여유는 필수. 무슨 다른 반찬이 필요할까. 끝.

사실 꽃게무침에 꽃게탕까지 곁들이는 것은 너무 지나친 사치인데, 그래도 ‘사계’를 촬영하러 간 것이었기 때문에 꽃게탕도 주문했다. 꽃게무침은 수컷 게만을 사용하지만 간장게장이나 꽃게탕은 알 밴 암꽃게를 사용하지 않으면 약간 서운한데, 전문점 중에서도 꽃게탕에 수컷 꽃게를 사용하는 집들이 꽤 있다. 대신 이런 집들은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으면 가끔 싸움이 나기도 한다. 손님은 손님대로 “세상에 꽃게탕에 알밴 암케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고, 업주는 업주대로 “그럼 이 가격에 어떻게 알밴 꽃게를 쓰느냐”고 맞선다. 서로의 상식 안에서는 각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살아 보니 이 세상에는 그 많은 사람의 숫자만큼의 상식이 있다. 각자 자신의 상식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상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싸움이 난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꽃게편. 인터넷 캡처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봄철이야말로 알이 꽉 친 생물 암꽃게로 꽃게탕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철이기 때문이다. 여름, 가을, 겨울에 먹는 꽃게탕은 봄철에 잡아 선동한 암꽃게로 끓이는데, 어차피 그 선동 꽃게들도 봄에 난 것들이기 때문에 봄철에는 생물이나 선동한 것이나 가격 면에서 같은 조건이다. 통상 경기 충남 지역에서는 꽃게탕에 감자, 단호박, 호박 같은 부재료를 많이 넣어 국물이 살짝 걸쭉해지는 것을 선호하고 목포 전남 지역에서는 양파 외의 다른 재료를 자제해 국물 맛이 개운해지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지만, 개인의 선호가 있을 뿐 스타일에 우열은 없다. 어쨌든 중요한 점 하나. 꽃게탕을 먹으러 갔다면 메뉴판을 본 다음 ‘알 밴 꽃게 쓰나요?’, ‘생물인가요, 냉동인가요?’ 이 두 가지는 꼭 확인하자. 그리고 나서 다시 메뉴판에서 가격을 확인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분명한 건 냉동 수컷 꽃게탕의 값을 내고 생물 암컷 꽃게탕을 먹으려 하면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니 제값을 내고 제맛을 보자. 무리한 욕심은 화의 근원이니.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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