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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거칠수록 맛있어진다… 일출 명소 호미곶 돌문어 맛의 비결[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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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거칠면 거칠수록 맛있어지는 그놈
일출의 명소, 해가 뜨는 곳에서 돌문어를 맛보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별주부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용왕이 병이 나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올라갈 신하를 찾는데 처음으로 자원한 것은 자라가 아니라 문어였다. 용왕이 “공의 용맹은 내가 안다”고 기뻐하며 문성장군으로 승진시키고 임무를 맡기려 하는데, 자라가 끼어들어 문어를 꾸짖는다.

“문어야, 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이 약간 있다 하나, 언변이 없고 의사 부족하니 무슨 공을 세울 것이냐. 인간들이 너를 보면 영락없이 잡아다가 요리조리 오려 내어 국화송이 매화송이 형형색색 아로새겨 혼인 잔치며 환갑잔치에 큰상의 어물 접시 웃기로 긴요하고, 재자가인 놀음상과 남서한량의 술안주에 구하노니 네 고기라. 무섭고 두렵지 아니하냐?”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 조상들이 문어를 어찌 여겼는지가 이 문장 하나에 다 들어 있다. 젯상이며 잔칫상의 긴요한 해물이며 술안주로도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음식. 게다가 이름에도 글월 문(文)자가 들어 있고, 머릿속에도 먹물이 꽉 차 있어 일찍부터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밖으로 나가면 문어가 그리 인기 있는 식재료는 아니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등북부나 중부 유럽 국가들은 문어나 오징어 등 연체동물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서나 먹는 음식이다. 최근에는 나라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널리 퍼졌지만, 아직도 서구 백인 중에는 살아 있는 문어를 보고 질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의 ‘그 장면’이 왜 그리 강렬한 인상을 줬는지 알 만하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반면 한국인의 입장에선 이 맛있는 문어를 먹지 않는 나라가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다. 뚜렷한 이유도 딱히 없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성경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물에 사는 것들 중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들은 혐오스러운 것들이니 먹어선 안 된다’는 데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가르침에 따르면 문어나 낙지뿐만 아니라 게, 새우, 조개가 모두 금기 식품이어야 한다. 게다가 앞서 말한 지중해 연안 국가들도 독실한 가톨릭 국가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성경에서 이유를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어 혐오는 대양에 사는 괴물처럼 큰 연체동물에 대한 전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거대한 문어의 형상인 괴물 크라켄(Kraken)은 배 한 척을 통째로 감아 침몰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그런 전설 때문인지, 자칫 흉악한 생김새 때문인지, 문어는 악마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 007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무리 스펙터의 상징이 괜히 문어인 것이 아니다. 듣고 보면 이쪽 의견이 더 그럴 듯하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아무튼 근래에는 전 세계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먹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문어를 먹는 데 대한 반감은 최근 들어 다시 일고 있다. 지난 2012년, 딜런 메이어라는 20세의 미국 청년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문어를 “집에 가져가 요리해 먹겠다”고 SNS에 올린 뒤 살해 위협까지 받는 등 엄청난 지탄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문어의 생태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문어가 놀라운 지능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의 일이다.

지난해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이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면서 이런 움직임을 더욱 부추긴 듯한 느낌도 든다. 문어 보호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게 지능도 높고 모성애도 강한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사실 지능이 높은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는다면 소나 돼지는 과연 지능이 낮아서 먹어도 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 전체를 부도덕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밥상에서 문어를 마주했을 때 식욕이 떨어질 만도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포항 호미곶 문어 앞에서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포항을 감싼 영일만 끄트머리의 호미곶. 호랑이 꼬리라는 뜻.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울산 간절곶과 함께 매년 1월 1일이면 관광객으로 교통체증을 겪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문어 산지로 유명한 이곳, 문어가 맛있는 이유가 있다.

“물살이 음청 쎄. 그래서 이 문어들이 안 떠내려갈라꼬 힘 꽉 주고 바위에 매달리거든. 그러니 살이 딴딴하고 찰지지. 그래서 맛있는기라.”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한국에서 나는 문어는 대략 두 종류로 나뉜다. 피문어라고도 불리는 대문어는 붉은색이 강하고 30㎏, 크게는 50㎏까지도 자란다. 그리고 참문어라고도 불리는 돌문어는 다 자라도 3㎏ 정도. 피문어에 비해 돌문어는 살이 쫄깃하고 단단해 크기는 작지만 훨씬 더 오래 삶아야 먹기 좋다. 그런데 호미곶의 돌문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물살이 빠르고 강하기 때문에 더 근육질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봄철이 되면 겨우내 깊은 바닷속에 움츠리고 있던 문어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물가로 나온다. 이른바 문어 철의 시작이다.

호미곶의 명물인 ‘바다에서 솟아오른 손바닥’을 보고 읍내로 이동, 수협 공판장을 찾았다. 사실 한국인이 문어를 먹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잘 삶으면 된다. 그런데 같은 문어도 호미곶 사람들이 삶으면 맛이 다르다. 백종원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잘 삶아진 문어는 썰 때 칼이 들어가는 모습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은 삶아 식힌 문어를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어디서나 대개 얇게 썬다. 삶은 문어는 조금만 과숙을 해도 질겨지기 때문에, 얇게 썰어 질긴 식감을 없애려는 것이다. 하지만 호미곶 문어는 다른 곳보다 거의 두 배의 두께로 썰지만 전혀 질기지 않다. 삶은 시간과 중간에 슬쩍 건져 주는 것이 비법이라고 하는데, 알아도 따라 할 수가 없다. 수백 년간 문어를 삶아 온 기술이 명불허전이다.

삶아 썬 문어는 그냥 초장에도 찍어 먹고, 기름소금도 찍어 먹고, 미역에도 싸 먹고, 김치에도 싸 먹고, 돼지고기를 삶아 김치와 함께 문어 삼합으로도 해 먹고, 어떻게 해서 먹어도 맛있지만 근래 호미곶 사람들은 새로운 먹는 방법을 개발했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일단 철판에 삼겹살을 올리고 굽는다. 삼겹살이 맛나게 구워지면서 기름이 나오면, 그 기름에 삶은 문어를 올려 살짝 지진다. 역시 너무 오래 구우면 살이 오그라들면서 질겨질 수 있기 때문에, 노릇노릇해질 정도로만 살짝 지지는 것이 포인트. 그렇게 두 번 익힌 문어를 삼겹살에 싸서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 완성된다. 육지의 단백질과 바다의 단백질이 만나 경이로운 맛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이렇게만 배를 채워도 좋지만 그래도 맛봐야 하는 것이 문어 연포탕. 낙지 연포탕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무우만 썰어 넣어도 시원한 국물 맛이 그만이다. 문어 연포탕에 밥을 말면 반찬으로 김치 하나면 충분하지만 기왕 호미곶까지 왔으면 놓칠 수 없는 별미가 있다. 홑데기 식해.

뿔돔과의 생선인 홍치를 이쪽 사투리로 홑데기라고 부르는데, 비리지 않은 깔끔한 맛 때문에 식해로 만들어 삭히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된다. 함경도에서는 주로 가재미와 좁쌀로 식해를 만들지만 포항 사람들은 조와 쌀을 섞어 밥을 짓고 여기에 홍치와 무를 넣어 삭히기 때문에 그냥 식해가 아니라 밥식해라고도 부른다.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티빙의 '백종원의 사계' 문어편. 인터넷 캡처

뭐라 부르건 무슨 상관. 붉은빛이 도는 연포탕에 밥을 슬쩍 말았다 건진 다음 통통한 밥식해를 건져 같이 입에 넣고 씹으면 짭짤 콤콤하면서도 달콤한 동해바다의 맛이 그대로 몸속으로 스며든다. 소주를 부르는 맛. 호미곶에 그 많은 사람이 갔어도 일출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게 아마도 그런 이유 아닐까.

기왕 호미곶까지 갔으면 문어만 먹지 말고 근처 구룡포에 가서 대게나 모리국수까지 맛보고 오는 것이 이 동네를 제대로 즐기는 길. 그러고 나서 탁 트인 동해 봄 바다를 보면 절로 노래가 나온다. ‘젊은 날, 뛰는 가슴 안고, 수평선까지 달려나가는, 돛을 높이 올리자.’ 옆에 누가 있건, 이게 바로 ‘영일만 친구’의 기상이다.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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