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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박스」갖춘 떢볶이 집 줄 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떡볶이를 가수 변진섭과 함께. 한입 베어 물면 사르르르 녹는 맛. 쫄깃한 떡볶이에 실어드리는 촉촉한 다음 곡은…』
「떡볶이」와「최신가요」-.
도무지 어느 모로 맞춰보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
신당동 네거리에서 중부 소방서 옆 골목으로 올라가다 신동화 극장에 이르러 길 양쪽으로 늘어선 27개의 떡볶이 집들은 부조화의 조화를 상술로 창조해낸 이색거리다.
끊임없이 후각과 침샘을 자극해 유혹하는 떡볶이 냄새.
문을 열고 들어서면 7∼8평 크기의 홀 안쪽에 위치한 1평 남짓한 유리칸막이의 DJ박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신청곡을 받아요. 손님들이 주로 청소년·대학생들이라 선호하는 음악의 흐름을 알수 있어요. 앞으로 시내업소 DJ로 진출하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하루2시간씩 한달째 일하고 있다는 최모군(20·K대1년)은 이곳이 서울시내 DJ 신병 훈련소라고 했다.
DJ지망생은 주로 재수생이나 대학생들로 보수는 무료봉사에서 최고 월2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떡볶이 거리에 DJ가 등장한 것은 78년「바보들」집이 효시.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침체됐던 떡볶이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이곳 주인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는 11곳의 떡볶이 집에 DJ박스가 설치돼 있고 박스가 없는 집도 음향시설을 갖춰 주인들이 직접 음악을 틀어준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음식맛은 장 맛 아닙니까. 이 골목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은 짜장과 고추장을 섞어만드는 떡볶이장맛이 비결이지요』
상우회장을 맡고 있는 「전주집」주인 서옥성씨(36)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특징을 값싸고 양 많고 맛이 좋다는 세 가지로 꼽는다.
이중에서도 맛이 으뜸으로 조씨가 귀뜀하는 조리방법은 고추장과 짜장을 2대1∼3대1의 비율로 섞은 뒤 마늘·생강·조미료·엿·소금 등을 넣고 버무려 잘게 썬 양배추·파·양파 등과 함께 떡을 볶는다는 것.
83년부터는 라면·쫄면 사리를 함께 볶는, 오리지널과는 다소 변형된 조리방식이 채택돼 오늘에 이르렀다. 『떡볶이 거리는 65년부터 시작됐어요. 「원조 할머니 집」이 처음으로 생겼지요. 다른 곳에선 서로들 원조라고 간판에 써 붙이지만 이곳에선 역사가 뻔한 만큼 할머니 집 이외에는 원조라는 단어를 안쓰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습니다』라는 조씨의 설명.「원조 할머니 집」주인 마복림씨(70·여)가 지급은 복개돼 도로로 쓰이는 하천변에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리어카 떡볶이 노점상을 낸 것이 효시가 됐고 양 많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의 떡볶이거리를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조씨는 가난한 대학생이던 단골 손님이 어느새 중년이 돼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며『김한국·금보라·김수철씨 등 연예인들도 우리 집 단골』이라고 자랑한다.
남들은 걸맞지 않는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곳 상인들에게는 일종의 장인 정신이 두드러진 것도 특징.
주인이 바꿜 때면 남에게 팔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에게 물러주고 있다.
조씨의 경우 어머니로부터 가업(?)으로 물려받았고「할먼네 집」은 조카딸이, 「원조 할머니집」은 4명의 며느리가 물려받아 길 맞은 편에 분점까지 차렸다.
한달에 한번정도 친구들과 이곳을 찾는다는 박규옥양(20·S여대1년)은『교통도 편리하고 가격도 부담이 없는 편인데다 술을 팔지 않아 주정꾼이 없기 때문에 특히 좋다』고 말했다.『갈수록 프라이드치킨인가 햄버건가 하는 외국 음식만 좋아한다는 요즘의 청소년들 가운데서도 이곳을 찾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고「할먼네 집」주인 정문화씨는 말한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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