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파문 갈수록 “시끌벅적”/계파간 갈등커지는 거여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정계,YS 대권전략에 제동/일부 민주계선 탈당까지 거론
민자당이 「내각제」 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김종필 최고위원이 합의서명한 내각제각서 공개로 민주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고 이 합의문을 만든 실무책임자인 박준병 사무총장이 사표를 제출,파문은 쉽게 수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 개헌파 중에서는 아예 지금부터 공론화해 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정부의 연내 개헌여건조성 등이 지장을 받을 수 있는데다 평민당과의 등원협상까지 얽혀 판단하기 어려운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사실 당내 민정계는 극비리에 내각제 추진대책반을 운영해 왔다. 이 대책반이 발족된 것은 9월초.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불가」라는 표현은 내각제를 물 건너 보내려는 김 대표의 의도임이 분명해진 것을 확인한 청와대측과 민정계는 3계파 공동의 개헌추진이 어려워지자 독자적인 대책반을 구성한 것이다.
대책반에는 이춘구ㆍ심명보ㆍ정순덕ㆍ이자헌ㆍ김현욱ㆍ이치호 의원 등 민정계 중진들과 오유방ㆍ김중위 의원 등도 포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태준 최고위원이 9월초 한일 의원연맹 참석보고차 청와대에 들어가 노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대책반을 지원하는 방안과 앞으로의 대책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민정계의 중진들은 모두 나선 셈이다.
박 최고위원과 이들 민정계 중진들은 자주 민정계 의원들과 모임을 갖고 이 사실을 알렸고 청와대에도 2,3명씩 올라가 개헌에 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 청와대에는 최창윤 정무수석이 주축이 되어 정무비서실과 교수 6∼7명으로 기획단을 만들었으며 이 기획단의 후원으로 내각제개편 세미나가 이미 십수차례 열렸다.
또 여론조사를 빌려 내각제의 필요성도 은근히 홍보하고 있는데 세미나ㆍ여론조사 등에 상당한 자금이 흐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민정계는 김 대표가 대권에 재도전할 집념이 완강하다고 판단했으나 김 대표의 대권 전략은 기본적으로 국민과 야당의 이름을 빌려 내각제를 무력하게 만들고 다음에 소위 자신과 김대중 평민 총재의 양극 구조로 정국을 끌고가 여권의 대표주자로 나선다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이 이뤄지지 않고 현행대로 가면 대통령후보는 저절로 굴러 떨어진다는 게 김 대표의 계산이라는 것.
이에 따라 대책반은 우선 1단계로 김 대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각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여론조성에 나선다는 단계적인 전략을 마련했다.
민정계가 이처럼 내각제추진을 강력하게 밀고나가는 것은 노 대통령의 개헌의지가 원체 확고하기 때문이며 만약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YS(김 대표) DJ(김대중 총재)간에 결투가 벌어지면 선거과정에서 지역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국론분열을 회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 내각제추진팀은 올해말까지 노 대통령이 약속한 민생ㆍ경제안정(5ㆍ7담화문)에 주력하고 연말 5ㆍ7담화의 성과를 자체 평가한 뒤 정국을 내각제 개헌 국면으로 몰고가려 계획하고 있다.
국회통과ㆍ국민투표까지의 개헌일정은 늦어도 내년 8월에 끝난다는 게 1차 목표시한이다.
대책반은 김 대표가 내각제 개헌에 주도적으로 나설 경우 그에 상응한 대가,가령 일정지분의 공천권,내각제 하의 초대수상 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적절한 시기에 확약한다는 구상이다.
김 대표가 끝까지 총대를 메지 않으면 민정계가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계 핵심의 이같은 흐름을 감지한 김 대표도 새로운 대응전략을 모색,여기에 맞서왔다.
그동안 「야당과 국민이 반대하면 개헌불가」라는 원론적 상황논리로 내각제를 표류시켰던 김 대표는 그같은 대처방안의 한계를 느껴 태도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미지수다.
민주계의 의원 일부는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에선 탈당해 새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도 서슴없이 나돌고 있으며 차제에 김 대표에게 향후 정국구도를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불똥이 더 번지면 모두 마지막 대결로 돌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각서 공개파문이 커질경우 내각제가 당내갈등으로 더욱 추진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박준병 사무총장이 각서관리의 책임을 내세워 사표를 냈지만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박보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