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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제 풍랑 몰아쳐도 신구 권력 사사건건 싸움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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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개 낀 한국경제. 지난달 2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선들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무역수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여파 등으로 크게 악화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뉴스1

안개 낀 한국경제. 지난달 2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선들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무역수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여파 등으로 크게 악화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뉴스1

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무역·재정 쌍둥이적자  

온갖 경고음 울리는데, 정치권엔 위기의식 없어

삼각파도는 서로 다른 두 파도가 만나 형성되는 피라미드 형태의 파도다. 이렇게 형성된 파도는 물기둥이 두세 배 더 높아진다. 특히 태풍으로 인해 형성된 삼각파도는 배를 파손할 만큼 위력적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이런 삼각파도에 휩싸이고 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한꺼번에 전 세계를 덮치면서다.

한국 경제는 마치 조난 직전의 배처럼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를 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여파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충격까지 겹쳐 금리와 환율이 뛰고 에너지·곡물·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 시대였던 1970년대 이후 40여 년 만이다. 이 여파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함께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터널 안으로 빨려들고 있다.

대외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팔아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경제 체제의 한국에 비상상황을 의미한다. 그간의 경제 위기설이 모두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 그 위기의 결정적 징후는 지난해 12월부터 가시화했다. 이미 심각한 재정적자가 진행 중인데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달 연속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 이후 14년 만이다. 2월은 주춤하더니 3월과 4월 또다시 두 달간 무역적자 행진이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에너지 수입액 증가 탓이 컸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한 것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던 반도체 경쟁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수요에 맞춰 파운드리(반도체 주문생산) 확장에 나섰지만, 품질 논란에 휩싸이며 이 분야 절대 강자인 대만 TSMC의 추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주가가 6만원대에 머무르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쏙 빼닮고 있다.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여 재정 여력이 약화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되면 국민소득이 장기간 정체될 수 있다. 그 결정적인 시그널이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다. 일본처럼 무역수지가 적자이고, 재정 적자가 겹쳐 쌍둥이 적자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재정이 튼튼해 버텼지만, 지금은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의 힘을 동원할 여력이 많지 않다.

이 와중에 신구 권력은 첨예한 대립을 불사하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부터 용산 집무실 이전, 실외 마스크 해제까지 사사건건 다투고 있다. 8일 후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위기상황을 타개할 각오와 대책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더욱 안타깝다. 경제 풍랑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가 조난하면 국민이 또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여야는 부디 정쟁을 멈추고 밀려오는 삼각파도를 막아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