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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수완박’ 법안, 문 대통령의 거부를 촉구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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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 일방처리 이어 국무회의 연기 꼼수까지  

대통령 거부권 행사만이 입법독재 막는 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핵심인 검찰청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남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를 막으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도 ‘회기 쪼개기’ 편법으로 이날 자정 무산시켰다. 민주당이 계획대로 내일(3일)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하면 국회 차원에서 검수완박 입법은 완료된다.

지난 주말 검수완박 입법 현장은 꼴불견의 극치였다. 무제한 토론에 나선 여야 의원들 간에 고성과 삿대질, 야유가 난무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충돌하면서 양금희 의원이 몸을 밟혀 구조대가 출동했고, 전주혜·허은아 등 여성 의원들이 부상과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의 신속한 공포를 위해 마지막 편법 공세에 나섰다. 3일 열릴 예정인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를 늦춰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한 것이다. 이날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만큼 원활한 공포를 위해 국무회의 개최를 법안 통과 이후로 연기하려는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은 법조계뿐 아니라 학계나 시민단체도 반대하고, 민심도 부정적 반응이 많다. 이 법안이 위헌이란 논거는 한두 개가 아니다. 일례로 법안은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고발인을 제외했는데, 이는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란 지적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공청회 한 번 없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법안을 발효시켜 정권 비리 수사를 막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합리적 설명이 어렵다. 검수완박법이 공포되면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등 문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9월부터 모두 중단된다. 대장동·백현동 게이트나 성남FC 후원금 논란 등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불거진 의혹들에 대한 검찰 수사도 중단되거나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거대 여당이 권력 주변의 비리 의혹을 제 손으로 덮고, 새 정부의 수사권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관련 법안을 마구잡이로 바꾸고 있다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입법 독재를 기획하고 밀어붙인 사람들이 누구인지 반드시 규명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여당의 입법 폭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문 대통령뿐이다. 그의 결단이 절실하다. 5년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여당이 정권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급조했다는 의심을 받는 법안을 스스로 의결·공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