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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쏟아붓는 가덕신공항…선거와 정략적 계산의 결정체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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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전문기자의 촉] 선거와 인프라사업

국내 첫 해상공항으로 건설될 가덕신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국내 첫 해상공항으로 건설될 가덕신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경제성(B/C)은 0.5를 갓 넘고, 사업비는 해당 지자체가 애초 주장한 액수의 두배 가량 들고 예상 수요는 절반.

 통상적으로 어떤 인프라사업의 사전타당성조사(사타) 결과가 이런 수준으로 나왔다면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받을 수 있을까.

 사타는 기본적으로 특정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중앙부처나 지자체에서 연구기관에 의뢰해서 하는 절차로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그래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하는 예타와 비교하면 경제성이나 예상유발효과 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다.

 그런데 사타에서 B/C가 0.5를 겨우 넘는데다 사업비는 훨씬 많이 들고, 수요는 지자체 주장보다 절반 밖에 안 나오는데도 예타가 면제돼 사업추진이 확정된 사업이 있다. 바로 가덕신공항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건설추진 계획이 의결된 데 이어 29일에는 기재부의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예타면제가 최종 결정됐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사업은 예타면제 대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의결 직후 "동남권 지역주민들의 숙원이었던 가덕신공항 건설이 사타를 마치고 국무회의에서 추진 계획을 의결, 예타를 면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렇게만 보면 가덕신공항 사업은 관련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추진이 결정된 것 같다. 하지만 가덕신공항은 다른 사업과 비교하면 오히려 시작부터 마지막 예타면제까지 사실상 주요 절차를 제대로 거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2월 26일 국회에서 가덕신공항 건설특별법이 통과됐다. [뉴스1]

지난해 2월 26일 국회에서 가덕신공항 건설특별법이 통과됐다. [뉴스1]

 시작은 가덕신공항 특별법이었다. 애초 정부가 추진하던 김해신공항 계획이 2020년 11월 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의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따라 무산되자 갑자기 여야 정치권이 특별법을 발의해 이듬해 2월 통과시켰다.

 당초 총리실 검증위원회의 결론 자체도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십분 양보해서 이를 받아들이더라도 영남권신공항의 입지선정 절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야 했다. 정부도 그런 입장이었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이 이를 무시하고 가덕도를 신공항입지로 못 박아 버린 것이다. 가덕도는 앞서 두 차례의 신공항 입지평가에서 경제성 부족 등으로 탈락하거나 최하위에 그친 바 있다.

 대형국책사업의 입지를 정치권이 특별법으로 정해버린 초유의 상황이었다. 정치권은 예타는 물론 아예 사타까지 건너뛰려 했지만 "사업의 밑그림인 사타는 꼭 거쳐야 한다"는 정부 주장에 간신히 사타는 살아남았다.

 왜 당시 정치권은 신공항 입지선정 절차를 무시하고 특별법을 추진했을까. 바로 그해 4월로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이다. 부산지역에서 가덕신공항 추진요구가 거세다 보니 득표 전략으로 특별법을 내세웠다는 평가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기간 부산에서 가덕신공항의 조속한 착공을 약속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기간 부산에서 가덕신공항의 조속한 착공을 약속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으로선 시간이 걸리는 입지선정 절차보다는 당장 눈앞의 선거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사타 결과가 나오면 그를 정밀 분석하고 논의해서 예타 면제 여부를 결정할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사타가 끝나갈 무렵 또 하나의 거대한 선거가 있었다. 바로 대통령 선거다. 윤석열 당선인을 비롯한 주요 후보들은 표를 의식해서인지 가덕신공항의 조속추진을 공약했다. 윤 당선인은 예타면제도 약속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타 결과는 그저 참고자료에 불과한 처지가 됐다. 그 결과를 두고 정밀 검증은커녕 흔한 전문가 토론회조차 없었다. 아니 온전한 사타 보고서조차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덕신공항은 예타면제가 됐다. 대선공약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이번에도 지방선거가 6월 1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칫 사타 검증에 시간이 걸려 예타면제가 늦어지거나 혹은 제동이 걸릴 경우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정치권의 의중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만약 예타를 한다면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예타 면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예타 면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입지선정 절차부터 사타 검증, 그리고 예타까지 대형국책사업에 필수인 절차는 대부분 건너뛴 셈이다. 13조 7000억원을 투입해 활주로 1개를 가진 국내 최초 해상공항의 건설은 그렇게 결정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필요에 따라 활주로 한 개를 더 놓을 경우 6~7조원이 더 필요하다는 게 국토교통부 설명이다. 이러면 20조짜리 공항 사업으로 인천공항(4단계 사업 기준 총 17조원)보다 더 많다.

 이런 대규모 사업을 결정하면서 제대로 된 평가 절차조차 없다 보니 전문가들의 우려는 상당하다. 낮은 경제성도 그렇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해상공항의 안전성과 불확실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재부는 예타를 면제하는 대신 사업규모와 사업비, 사업방식 등이 적정한지 따져보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사업추진 여부를 가리는 예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미 추진이 확정된 사업계획을 보완하는 정도일 뿐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 이렇게 정략적 계산에 따라 결정되는 걸 손 놓고 구경만 할 바에는 아예 인프라사업의 결정과 추진 권한을 국회의원들에게 다 넘겨주는 게 낫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신 해당 사업을 추진하고 결정한 정치인들의 명단과 발언을 명확히 기록으로 남기고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책임도 확실히 묻자는 취지다. 안 그러면 나중에 애먼 공무원들만 책임을 뒤집어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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