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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판 엎었다"…'러 가스' 중독된 獨, 끔찍한 선택만 남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EPA=연합뉴스]

 “현재 독일에겐 나쁜 선택과 더 나쁜 선택만 있다.”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산 가스 제재를 둘러싼 독일의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가스 제재에 나설 경우 특히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에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면서다.

독일은 그동안 전체 가스 사용분의 5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의존도를 줄여왔지만, 여전히 러시아산의 비중은 35%에 달한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 장관은 “유럽 차원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가 현실화하면 독일 경기는 침체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독일은 현재 어떤 선택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러시아산 가스 금수 조치로 인해 독일의 GDP(국내총생산)가 올해 최대 5%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EU도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FP=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AFP=연합뉴스]

더욱이 독일은 금수 조치가 내려지기 이전에 러시아산 가스가 끊길 위험을 우려하는 처지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제재를 피해간 러시아 민간 은행인 가스프롬방크(가스프롬 금융 자회사)에 ‘특정 계좌’를 개설해 거래를 하라고 유도했다. 일명 ‘케이 계좌’(K계좌)란 이름의 이 특정 계좌는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를 통해 외환을 루블로 환전한다.

러시아는 4월분 가스대금을 자국이 요구한 루블화로 받지 못했다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때문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8일 "독일이 (폴란드와 불가리아의) 다음 차례가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NYT는 당장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 독일의 대기업과 수만 개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는다고 전했다.

독일은 루블화 지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하벡 장관은 27일 “유로화로 지불하고, 가스프롬방크의 K계좌에서 환전된다”며 “(이는) 제재와 양립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WP는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 카드는 판을 뒤집었다”며 "러시아가 루블화로 가스 대금 결제를 요구하며 유럽을 균열 시키려한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평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부 장관. [AFP=연합뉴스]

로베르트 하벡 독일 경제부 장관. [AFP=연합뉴스]

하지만, 독일에겐 이 선택도 쉽지 않다. 독일 등이 루블화 지불 가능성을 시사하자 EU 집행위원회는 27개 회원국들에게 루블화로 가스 대금을 지불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루블화 결제는 (사전) 계약에서 명시된 경우가 아니라면 제재 위반이 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요구에 동의해선 안 된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EU 독일 대표단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에 반대하던 독일이 기존 입장을 바꿨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EU는 이르면 다음 주 단계적인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독일은 석유에 이어 가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NYT에 따르면 하벡 장관은 이날 “곧 석유 금수 조치를 할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가스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독일은 끔찍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며 “독일에게 값싼 러시아 가스의 시대는 끝났고, 독일 산업 경제의 미래에 대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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