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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도 놀랐다, 의원들마저 헷갈리는 졸속 '검수완박'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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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한 축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가결됐다. 김성룡 기자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한 축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가결됐다. 김성룡 기자

하남현 사회1팀 차장의 픽 : 거듭된 ‘밀실 수정’, 깜깜이 검수완박 법안 

“국회의원도 헷갈려 하더라구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두고서입니다.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내용이 계속 달라져서죠. 더불어민주당 원안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으로 바뀌더니, 법사위를 통과한 안은 또 달라졌죠. 그런데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안은 또 수정됐습니다. 이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도 세세한 내용에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죠. 법이 바뀌면 직무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검사도, 법조 분야를 취재하는 언론인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오죽할까요.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뺏으면 도대체 뭐다 달라지는 건데?”라는 물음에 속 시원히 답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회의장 중재안에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은 지난 22일입니다. 중재안은 검찰의 기존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 수사권 가운데 부패‧경제는 남기자고 한 게 주 내용입니다. 당일엔 여야가 모두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은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해선 다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면서 재논의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은 거부했죠. 그리고 법안 처리 강행 작업을 본격화합니다. 민주당은 지난 26일 오후 2시에 국회 법사위 통과의 첫 관문인 법안소위를 열었습니다. 이후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쳐 전체회의까지 순차적으로 열어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27일 자정을 갓 넘겨 관련 법안이 통과됐으니 반나절도 채 안 걸린 거죠. 여야가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며 싸운 시간을 빼면 실제 회의 시간은 훨씬 줄어듭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증발된 중수청 신설 조항…여야는 네 탓만

법안이 일사천리로 넘어가는 와중에 내용도 변합니다. 대표적인 게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입니다. ‘한국형 FBI(미 연방수사국)’라고 하죠. 당초 합의안에는 ‘1년 6개월 안에 중수청을 설립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에는 이 조항이 사라졌습니다. 당초 합의안에는 중수청 설립 이후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한다고 했죠. 검찰 수사권 범위에 남겨놓은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수청 설립 조항 자체가 삭제되니 검찰이 언제까지 부패‧경제 범죄 수사권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호하게 된 거죠. 중수청 설치와 더불어 경찰권 비대화 견제 등을 논의할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합의 역시 증발됐습니다. ‘검수완박’ 이후의 대안이라며 합의했던 사안이 법안 처리 과정에서 실종된 것입니다.

중수청 설치 문구가 왜 사라졌는지도 아직은 미스터리입니다. 여야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서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수청 설치 조항을 누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중수청 설치 논의를 할 사개특위 구성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국민의힘은 협조할 수 없다고 했는데, 민주당이 사실상 단독 의결했습니다.

신인규 변호사가 28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신인규 변호사가 28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호사협회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 입법추진 변호사·시민 필리버스터'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졸속 변경에 ‘구멍’도 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야는 안건조정위가 열리기 직전 ‘부패·경제범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돼 있던 걸 ‘부패·경제범죄 등…’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수사 범위 확대 여지는 남겨두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안건조정위가 열리자 민주당은 부패·경제범죄 …’으로 된 소위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바뀝니다. 법사위를 통과한 본회의 상정안에는 ‘부패·중대범죄 …’ 문구가 되살아났습니다.

또 중재안은 송치 사건의 범죄 단일성·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별건 수사 금지)했지만, 본회의 상정안에선 ‘검사는 송치 사건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수정됐습니다.

고소인‧피해자가 아닌 고발인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 신청을 못 하게 한 조항도 신설됐습니다. 검찰이 “앞으로 n번방 고발자나 기업 등의 내부고발자는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려도 이의 제기를 못 하게 된다”며 비판한 문제의 조항이죠. 검찰 직접 수사 부서의 인원 현황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 조항도 추가됐습니다.

속도전으로 진행하는 통에 반드시 논의·수정돼야 할 부문을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정거래법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의 경우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검찰총장에게 고발 또는 통보하게 돼 있습니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이 조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안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논의할 생각도 없어보입니다.

경찰의 정치화·비대화에 대한 견제 장치도 없습니다. 경찰은 2024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을 예정입니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하면 국내정보 수집 기능에 이어 수사권도 사실상 독점하게 되는 겁니다. 힘이 세지고 규모도 커질 경찰이 과거 검찰과 같은 전횡을 저지르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이번 법안에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법안이 졸속 수정되는 와중에 구멍도 숭숭 뚫려있습니다.

70년 넘게 유지한 현 형사소송법 체계는 검사의 수사권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검사의 수사권을 뺏는다는 건 형사소송법의 토대부터 뿌리째 흔든다는 얘기죠. 이런 중대한 사안을 마구 밀어붙이며 처리하면 자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공청회‧토론회 같은 여론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키려 합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법 뚝딱” 

그래서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라는 내용을 떠나 이런 절차와 속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뺏는 것엔 동의하더라도 이런 식의 처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천정배 전 장관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난 오래전부터 검찰을 소추 기관화하고 검찰이 맡아온 수사기능을 FBI와 같은 전문수사기관을 신설해 담당케 하자고 주장해 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강행은 매우 위험하고 무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도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법을 뚝딱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여론 수렴 절차를 생략하니 국회의원과 일부 관계자들이 주요 조항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일반인들은 알기도 어렵습니다.

검찰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심을 맡았었던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역시 “형사사법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입법이 이해하기 어려운 절차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죠.

이런 목소리에 민주당은 귀를 닫았습니다. 이미 ‘꼼수 사보임’,‘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와 같은 온갖 편법은 다 동원한 상태에서 갈 길을 멈출 수도 없겠죠. 그들만의 시간표를 갖고 군사작전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주당 주도로 검찰청법 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민주당은 다음 달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통과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같은 날에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개정안을 공포한다는 방침입니다. 정작 아직도 검수완박 개정안의 실제 모습이 어떨지 불분명합니다. 검수완박 이후의 세상도 안갯속입니다. 민주당 일정대로 라면 검수완박 법안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됩니다. 불과 4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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