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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1265원, 하루 14원 급락…수입물가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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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크라이나 사태 속 미국의 고강도 긴축과 중국 봉쇄 공포가 키운 ‘퍼펙트스톰’(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해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이 금융시장을 덮쳤다. 코스피는 2600선을 위협받고, 달러 강세 속에 원화값은 2년1개월 만에 1260원 선을 뚫고 추락했다(환율 상승).

27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1% 내려앉은 2639.06으로 장을 마쳤다. 연초(2988.77)보다 12% 하락했다. 코스닥(896.18)은 이날 1.64% 떨어지며 800대로 내려앉았다. 일본 니케이225(-1.17%)와 대만 가권지수(-2.05%) 등 아시아 증시도 대부분 하락했다. 다만 최근 폭락했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반발 매수에 힘입어 2.5% 반등했다.

원화값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 종가(1250.8원)보다 14.4원 하락한 달러당 1265.2원에 거래를 마쳤다(환율 상승). 2020년 3월 23일(1266.5원) 이후 2년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 달 사이 46원 수직 낙하한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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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방어선 역할을 하며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250원 선도 무너졌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원화값이 1250원 밑으로 떨어진 건 2010년 유럽 재정위기와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 초기뿐이다.

금융시장에 휘몰아친 퍼펙트스톰의 도화선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봉쇄 공포다. 특히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면 기업의 제품 생산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원화값 하락이 수출 호재?  원자재 비싸게 사와야 돼 부담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 종가보다 14.4원 하락한 달러당 1265.2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 종가보다 14.4원 하락한 달러당 1265.2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거세어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기 위해 미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돈줄 죄기(금리 인상)에 나선 것도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악재다. 시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에 이어 오는 6월에는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미국 긴축은 국내 금융시장에는 불안한 신호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의 몸값이 뛰면 한국 주식을 팔아 달러로 바꾸는(환전) 외국인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가 원화가치 하락의 신호와도 같다. 미 달러화 금융상품에 투자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화 자산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상대적으로 달러가 비싸지면서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올해 들어 27일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10조원에 육박한 9조792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원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다.

1260원선 뚫고 하락한 원화가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260원선 뚫고 하락한 원화가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융시장에선 앞으로도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데, 유럽과 중국·일본 모두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의 요인”이라며 “2분기 원·달러 환율 밴드(변동 범위)의 상단을 1270원대로 봤는데, 이를 1280원으로 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 하락은 타국 통화로 표시된 자국의 수출품 가격을 내린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출 물량 증대→자국 경제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개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향해 가는 한국에 원화값 하락은 이젠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기술력을 확보한 국내 기업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와서 가공해 수출하거나, 중간재를 해외로 넘긴 뒤 현지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수출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원화값이 하락한 만큼 원자재 등을 그만큼 비싸게 사와야 하는 부담이 커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수출 경쟁국인 일본·대만·중국 등도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원화 못잖게 떨어졌다. 한국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이들의 수출품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원화 가치 하락이 최근 글로벌 원자재 부족 등과 겹치면서 수입물가를 올리고 소비를 줄이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등의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책적으로 환율의 고삐를 죌 수단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제재를 받는 환율조작국의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라 있다. 정부가 환율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다시 맺는 것을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통화 스와프란 두 국가가 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와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박영범 교수는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원화 가치는 계속 하락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한·미 통화 스와프를 재개하는 것이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데에는 효과를 볼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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