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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사계절 정신" 창립 40주년 강맑실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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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화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강맑실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화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강맑실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몇 년 전『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로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어떤 엄마가 와서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그 책을 읽었다고, 그때 여섯 살이었다고. 세대를 넘어 사계절의 책이 읽힌다는 거, 너무 흥분돼죠."
 책을 만드는 원동력을 물었더니, 사계절출판사 강맑실(66) 대표가 답처럼 들려준 일화다. 27일 그를 만난 곳은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여기서 전날 시작된 '사계절40, 책·사람·자연’은 이 출판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독자들에게 한 번쯤은 제대로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자리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실린 원화를 비롯, 독자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전시와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6월초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사계절의 40년 역사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책을 꼽자면 단연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과 『반갑다 논리야』. 우화를 통해 청소년 눈높이에서 전개한 위기철 작가의『반갑다 논리야』는 1992년말 출간 이후 1년 만에 100만부가 훨씬 넘게 팔렸고,  2권『논리야 놀자』, 3권 『고맙다 논리야』역시 1권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부 넘는 판매량은 물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앞서 전집류 위주였던 어린이책 시장에 단행본으로 그림책을 내기 시작한 것도 사계절의 오랜 자랑. 청소년문학이 대상인 사계절문학상도 어느덧 20년에 이른다.
 강 대표는 87년 사계절에 입사, 편집장을 거쳐 94년부터 대표를 맡아왔다. 남편이자 창립자 김영종 전 대표에 이어서다. 강 대표 스스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는 것도 이 무렵이다. "1982년부터 첫 십여년이 직선이었다면 제가 대표를 맡은 이후 90년대 말까지는 갈지(之)자였죠. " 당시 '역사신문' 시리즈나 '문익환 전집' 같은 굵직한 기획은 시작됐지, 기존 베스트셀러의 매출을 줄어들지, 그래서 "조급했다"고 돌이킨다. 예나 지금이나 사계절의 이력에서는 뜻밖인 『안전운전 365일』같은 책도 냈단다.

강맑실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맑실 대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널리 알려진 대로 사계절은 김 전 대표가 "독재에 항거하는 정신"으로 만든 출판사. 80년대 말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지켜보며 대중적인 접근과 청소년·어린이를 위한 교육에 눈을 돌린 것도 그였다. "학생운동을 하던 한 젊은이가 독재정권 시절 책으로 항거하면서 출발한 정신을 대중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사계절이 지키려고 했던 정신이 과연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 강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다시 방향을 잡아갔다. 그는 "시대의 꾸준한 도전에 책으로 응전하는 것, 시대의 질문에 책으로 답하는 것"을 사계절의 정신으로 꼽았다.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2005년 개성에서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 작가 홍석중과 만났던 일. 홍석중은 사계절이 1985년 출간 이후 집계한 판매 관련 자료를 보지도 않고 신뢰를 드러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발표된 이 대하역사소설은 벽초의 월북 이력 때문에 사계절이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금단의 벽을 넘어 TV드라마로도 만들어지는 인기를 누렸다. 강 대표는 "남북이 갈려 있는 한 이 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어떻게 보면 사계절에 있어서 늘 갈길을 비춰주는 책"이라고 했다.
『반갑다 논리야』의 시절과 달리 요즘 출판계에서 100만부 판매는 언감생심. 하지만 강 대표는 결코 "출판의 위기"라고 하지 않았다. "그만큼 좋은 책들이 많아졌고, 또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죠. 그림책만 해도 우리 작가들이 세계적인 상을 휩쓸잖아요." 다만 인문사회과학 분야, 또 출판의 실핏줄인 동네 책방에 대해서는 지원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창립 40주년 전시와 함께 사계절은 동네 책방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을 펴냈다. 책에 실린 책방 모습은 강 대표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창립자와 다른 '출판인 강맑실'의 강점을 물었다. "저는 김영종 선생처럼 인문사회과학에 해박하지 않아요. 모르는 게 많으니 직원들하고 의논할 수밖에 없죠. 소나무 밑에서는 풀이 못 자라잖아요. 저는 하나의 들꽃처럼 다른 들꽃들과 어우러져 고민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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