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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1263원…韓, 과거와 달리 '수출 호재' 안먹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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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에 호재로 작용했지만, 이 등식은 더는 성립되지 않고 있다.

27일 기획재정부와 하나은행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달러당 1263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8.5원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장중 달러당 1264.4원까지 밀렸다. 달러 대비 원화값이 1260원대로 떨어진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24일(장중 1265원) 이후 약 2년1개월 만이다. 최근 한달새 50원이 떨어질 정도로 원화값 하락 속도가 빠르다.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급등해 달러당 1260원 선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급등해 달러당 1260원 선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미국의 강력한 통화정책 긴축 가능성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공식화한데 이어, 일부 연준 인사들 사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0.75%포인트를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 달러화 금융상품에 투자할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화 자산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상대적으로 달러가 비싸지면서 원화 가치는 하락하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 등에 따라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는 점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높다 보니, 원화는 중국 위안화의 환율 흐름을 따라가는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가 늘어나는 점,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로 자본유출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도 원화값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원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며 원달러 환율은 2년 1개월만에 1260원대에 진입했다.

원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며 원달러 환율은 2년 1개월만에 1260원대에 진입했다.

금융시장에선 앞으로도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데, 유럽과 중국ㆍ일본 모두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의 요인”이라며 “2분기 원달러 환율 밴드(변동 범위)의 상단을 1270원대로 봤는데, 이를 1280원으로 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통화가치 하락은 타국 통화로 표시된 자국의 수출품 가격을 내린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출 물량 증대 → 자국 경제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개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향해가는 한국에 원화값 하락은 이젠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기술력을 확보한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사와서 가공해 수출하거나, 중간재를 해외로 넘긴 뒤 현지에서 완성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수출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원화값이 하락한 만큼 원자재 등을 그만큼 비싸게 사와야 하는 부담이 커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수출 경쟁국인 일본ㆍ대만ㆍ중국 등도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원화 못잖게 떨어졌다.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이들의 수출품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원화 가치 하락이 최근 글로벌 원자재 부족 등과 겹치면서 물가를 올리고 소비를 줄이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등의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 재개해야"

문제는 정책적으로 환율의 고삐를 죌 수단이 마땅찮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 제재를 받는 환율조작국의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라 있다. 정부가 환율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다시 맺는 것을 추진하라고 주문한다. 통화 스와프란 두 국가가 자국 통화를 상대국 통화를 미리 약속한 환율에 따라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필요하면 달러를 미리 약정한 환율로 빌려올 수 있기 때문에 달러 확보가 그만큼 수월해진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 차례 연장됐던 600억달러 한도의 한미 통화 스와프는 지난해 말 종료됐다.

박영범 교수는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원화 가치는 계속 하락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한미 통화 스와프를 재개하는 것이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데에는 효과를 볼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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