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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휠체어 시위를 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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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현장에 있었다면 난 어땠을까. 장애인 이동권과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말이다. 휠체어 탑승과 오체투지로 출근길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 “시민 피해가 너무 크다” “누구나 시위할 권리가 있다”는 등 반응이 엇갈렸다. 시민들의 피로감 호소가 커지자 장애인총연합회는 이런 방식이 “장애인에 대해 인식을 나쁘게 한다”며 비판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시위가 장애인 문제에 대해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끌어낸 것은 분명하다. “비문명적 시위”라고 비판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JTBC에서 TV토론을 갖기도 했다. 국내 TV토론 프로에서 장애 이슈를 다룬 것은 최초였다. 장애인의 날(20일) 하루 전에는 발달장애인과 가족 500여 명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식을 했다.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동참했다.
 미국의 장애 운동사를 쓴 책 『장애의 역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장애(disability)’란 말이 생긴 것은 근대국가의 탄생과 무관치 않다. 이전에도 맹인·농인 등 결함을 지닌 이들은 있었으나 이들을 ‘장애인’으로 범주화한 것은, 독립적이고 유능해 국민의 자격을 갖춘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을 분리하면서다. 의존적이고 노동할 수 없어 ‘하자’ 있는 존재들은 시설로 보내졌다. 지금 전 세계 중증장애인 운동의 주요 키워드가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시설 보호 대신 지역사회에서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장애인 시민권의 출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3호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장면.                 [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3호선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는 장면. [연합]

 얼핏 장애는 나와 무관한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국내 등록 장애인의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가 고령자나 임산부에게 좋듯 ‘장애인에게 좋은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기도 하다. 또 흔히 장애를 육체·정신의 손상과 동일시하지만, 문제는 손상 자체가 아니라 손상으로 인한 차별이다. ”흑인은 흑인일 뿐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흑인은 노예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빌리면 ”손상은 손상일 뿐,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장애가 된다“(『장애학의 도전』)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말도 있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애인의 40%가량이 초졸 이하(무학 포함)였다. 낮은 교육, 불안정 고용, 빈곤, 낮은 사회적 인정의 연쇄다. 새 정부를 향해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지만, 장애인 복지 약속을 안 지킨 것은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단체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는 건 답이 아니다. 장애 이슈는 정파를 따질 일이 아니고, 앞으로 소수자·정체성 이슈가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질 게 뻔하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 역사나 저상버스가 늘고 있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버스는 전무하고, 택시를 타려 해도 1시간 넘게 기다리기 일쑤다. 국내 장애인은 2020년 기준 263만 명, 국민 20명 중 1명꼴이다. 반면 장애인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 눈에 잘 안 보이니 없는 존재 취급을 너무 오래 했다. 법·제도 정비 못잖게 우리의 시선도 돌아봐야 한다. 남성이 바뀌어야 여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비장애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장애인 문제도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농인인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라일라 작가는 “한 국가의 복지 수준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지체 장애인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신체적 불편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생산적 발전의 ‘장애’로 여겨 ‘장애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을 못해서가 아니라 못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기대에 부응해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남들이 ‘장애인 교수 운운’할 때에야 장애인이라는 걸 깨닫곤 했다는 고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시위방식 적절성에는 논란 있어도 # 본질은 ‘장애인도 시민’ 인식 확대 #장애인에게 좋은 건 모두에게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