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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과 '판단 미스' 권성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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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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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을 무슨 선거판에 끌어들이나. 고3은 부모와 선생님에 대한 의존이 심하고 독자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투표권을 주지 않아도 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17년 1월에 한 말이다. 그는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의 가치를 되찾겠다며 창당한 바른정당에 합류한다. 당시 바른정당은 개혁 법안으로 선거 연령 18세 하향 조정을 추진해 당내 '합의'를 이뤄냈다고 발표하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발표 다음 날 권 원내대표 등이 반발하면서 합의는 하루 만에 번복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바른정당의 초반 기세가 좋았는데 '18세 투표 연령 번복'이 찬물을 끼얹었다. 지지율 폭망의 원인을 제공한 거다. 민주당의 오만과 독주 덕에 국민의힘의 페이스가 좋았는데 검수완박 합의 번복을 보니 딱 그 일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검수완박호재가 한순간에 위기로 #일부 장관 인선엔 지지층도 갸우뚱 #마이웨이 말고 협치·통합도 챙겨야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 원내대표가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처음은 아닌 모양이다. 섣부른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의 후폭풍이 엄청나다. 그는 책임론 앞에 섰다. 그의 '판단 미스'가 없었더라면 민주당은 폭주와 오만의 낙인이 찍혀 휘청거리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민주당이 오히려 "단독처리 명분을 얻었다"고 주장하며 다시 거침없는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힘이 온몸으로 막고 나섰지만 동력이 예전만 할 리 없다. 권 원내대표는 윤석열 당선인의 '죽마고우'이자 '윤핵관' 중에도 핵심이다. 그런 그가 검수완박 문제를 두고 내린 '판단 미스'는 고스란히 윤 당선인에게 부담으로 가게 생겼다. '검수완박 꽃놀이패'가 한순간에 다중 위기로 돌변할 태세여서다.

사실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윤석열 인수위'의 평가가 시원찮다. 실점의 연속이었다. 그 허물을 민주당의 광기가 가리고 있었는데, 그 막을 권 원내대표가 치운 모양새가 됐다. 더구나 윤 당선인의 첫 시험대라 할 수 있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
당장 청문회 과정에서 인사 문제가 악재로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인수위 활동의 핵심이 인사인데 이를 두고 제일 말이 많다. 윤 당선인을 찍었던 이들도 인사에선 고개를 흔드는 경우가 적잖다. 서육남(서울대·60대·남자)도 안타까운데 면면까지도. 총리에서 물러나 김앤장 등에서 거액을 받은 뒤 또 총리를 하려는 한덕수 후보자, 조국과 닮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 당선인의 지지율을 끌어내릴 수 있는 후보자가 여럿이다.

물 건너간 협치도 윤 당선인의 발목을 잡을 거다. "윤석열 정부 되면 감옥 간다"고 할 정도로 '윤석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민주당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카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협치 날아갔다"(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협치는 포기"(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는 정확한 진단이다. 거기다 중재안 합의 번복으로 한동안 협치 얘기는 아예 꺼내기도 어렵게 됐다. 여소야대에서 협치가 안 되면 대통령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걸 넘어보겠다고 당선인 측에서 '검수완박 국민투표' 카드를 꺼낸 모양인데 선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또 스타일만 구겼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안 했는데 '죽마고우'의 헛스윙 정도는 이겨내야 하지 않겠나.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미국을 닮은 내각'이란 목표를 세워 첫 여성 흑인 부통령 해리스를 선택했다. 내각 구성원 25명 중에는 여성이 12명, 비백인이 13명(『바이든의 첫 100일』에서)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핵심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 '정적'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과 골프 치는 걸 마다치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을 한 차례도 임명직으로 보낸 적이 없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통합을 지향했고 야당과 대화했다. 국민 여론엔 민감했다. 윤 당선인이 새겨봐야 한다. 지금까지 '마이웨이' '직진승부'가 주무기였다면 이젠 다른 방안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