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노리고 동거녀子 살해…14년 전 여친은 현재까지 실종

중앙일보

입력 2022.04.23 08:00

업데이트 2022.04.23 08:38

[요지경 보험사기]

중증지적장애가 있던 A(20)씨의 시신은 2019년 9월 19일 오전 9시 무렵 가로 276㎝, 세로 127㎝, 높이 90㎝의 철제 적재함에서 발견됐다. 발견 장소는 전북 임실군을 지나는 17번 국도 인근의 인적 드문 도로였다. 가족이 가출을 신고(9월 5일)한 지 보름여 만에 발견됐다. 가족들은 실종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백모씨는 2019년 9월 4억원대 사망보험금을 목적으로 의붓아들을 살해한 후 시체를 유기했다. 백씨는 2020년 10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진은 폴리스라인. 중앙포토

백모씨는 2019년 9월 4억원대 사망보험금을 목적으로 의붓아들을 살해한 후 시체를 유기했다. 백씨는 2020년 10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사진은 폴리스라인. 중앙포토

A씨가 입고 있던 바지 주머니에서는 지갑과 회원증, 현금 2000원, 이어폰 2개가 발견됐다. A씨의 머리에서는 직경 2.5㎝ 정도의 다수 골절이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를 부검하고 “혈중 미르타자핀의 농도가 높은 상태에서 머리 부위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우울증에 복용되는 미르타자핀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졸음이다. A씨의 신장조직 등에서 검출된 미르타자핀 1.7mg/kg이 검출됐는데, 이는 치사량(1.8mg/kg)에 근접한 수준이다.

목격자도 흉기도 없었지만 범인의 덜미는 금방 잡혔다. A씨의 모친 B씨와 2014년부터 동거를 하던 백모(60)씨였다. 백씨가 함께 지내던 A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건 4억1700만원의 사망보험금 때문이었다. 백씨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수년간 자신과 함께 생활해 온 피해자를 피보험자로 하여 4억원이 넘는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음을 기화로 치밀한 계획 하에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다.'

판결문 등의 내용을 통해 백씨의 범행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백씨는 2019년 9월 3일 오전 9시 40분쯤 집 근처에서 A씨를 자신의 차량에 태웠다. 이후 백씨는 A씨에게 미르타자핀 등의 약물을 먹여 의식을 잃게 했다. 백씨 차량에서는 약 봉투에 든 잘려진 살구색 약이 발견됐는데, 미르타자핀 성분이 검출됐다.

판결문 등에 따르면 A씨는 식탐이 많아 백씨가 약물을 먹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약물을 먹인 시점은 오전 11시 50분 이전으로 추정된다. 오전 11시 50분쯤 전남 보성군의 한 CCTV에 백씨의 차량 조수석에 한 남성이 의식을 잃은 채 실려가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서다. 백씨는 이후 전남 장흥군과 보성군, 순천시, 임실군 등을 다녔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CCTV에는 백씨의 차량이 시체 유기 지점 인근으로 진입하는 모습이 오후 6시 12분~6시 16분, 오후 6시 47분~6시 55분 등 두 차례 담겼다. 재판부는 이중 오후 6시 47분~6시 55분 사이의 8분 50초 동안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봤다. A씨의 시신이 발견된 상황을 볼 때 재판부는 백씨가 A 씨를 뒤에서 안듯이 들어 적재함에 넣은 정황으로 판단했다.

A씨는 수사기관의 조사과정과 재판 과정 중 범행을 부인했다. 의식을 잃은 조수석의 남성은 전남 목포시 인근에서 태운 무전 여행객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사망했을 때 나오는 보험금은 모친 B씨가 타게 돼 자신에게는 경제적 이득이 없고, 부동산 임대업 등으로 경제 형편이 넉넉해 범행 동기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사체가 발견된 곳을 우연히 두 차례나 지나칠 가능성이 극히 드문 데다, 무전 여행객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7시간 동안 태웠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졌다고 봤다.

게다가 B씨가 백씨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돼 있어 보험금은 백씨가 가질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B씨는 A씨의 사망보험금으로 수령한 5000만원 중 1000만원을 백씨의 1심 변호인 선임 비용에 사용했다. 게다가 백씨는 신용불량자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았다.

늘어나는 살인.상해 보험사기 적발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늘어나는 살인.상해 보험사기 적발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범행 1년 전 집중적으로 가입한 보험도 범행 증거가 됐다. A씨를 피보험자로 한 보험 3개는 범행 1년 전인 2018년 8~9월 사이 집중적으로 가입됐다. 월 보험료만 70만원이 나갔다. 2018년 8월에는 사망보험금만 6억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다가 1개월 만에 해지했다.

A씨 가족의 수익은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과 자녀들의 장애연금 등 50만원이 전부였다. 통상 짧은 시기에 다수의 보험에 들어 소득에 비해 과다한 보험료를 내는 건 보험사기 범행의 주요 징후다.

그동안 백씨가 수차례에 걸쳐 보험사기를 저지른 정황도 있었다. 2008년에는 동거하던 여성의 명의를 이용해 보험료를 환급받거나 요양급여를 대신 받아 내다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동거녀는 현재까지 행방불명인 상태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2월 백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믿고 함께 피해자를 찾으려 실종자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나눠줬던 피해자의 모친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슬픔은 상상할 수도 없이 크다”며 “피해자 가족과 피고인을 영구적으로 격리할 필요성이 크다”며 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 백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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