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만 가면 꼬리뼈 골절…3.8억원 꿀꺽, 간 큰 병원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2.02.26 08:00

업데이트 2022.02.26 08:16

[요지경 보험사기] 

부산 서구에 있는 A 영상의학과 의원은 보험사기를 치는 이들에게는 ‘골절 작업’을 잘 해주는 병원으로 통했다. 이 병원의 의사였던 B씨가 영상 촬영만 하면 허위 골절진단서를 발급해줬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목욕탕이나 화장실에서 넘어졌다고 하면, 꼬리뼈(미추)나 엉치뼈(천골) 골절 진단을 내줬다.

보험사기 브로커 박씨 등은 부산 서구의 A영상의학과에서 꼬리뼈 등이 골절됐다며 허위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보험사기 브로커 박씨 등은 부산 서구의 A영상의학과에서 꼬리뼈 등이 골절됐다며 허위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이 병원에서 보험사기를 시작한 건 환자였던 박모(56)씨다. 허위입원으로 보험금을 타내다 적발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박씨는 2015년 6월 A병원을 찾아 ‘화장실에서 청소하다 넘어졌다’며 초음파 촬영을 한 뒤 갈비뼈와 꼬리뼈가 골절됐다는 진단서를 끊었다. 물론 박씨는 청소를 하다 넘어진 적도 없었고, 골절을 입은 적도 없다.

하지만 박씨는 의사 B씨가 써준 진단서를 제출해, 보험사 한 곳에서 골절진단비 70만원을 받아 챙겼다. 박씨는 이후 가족 등을 동원해 같은 수법으로 보험사기를 저질렀고, 285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박씨의 보험사기는 더 대담해졌다. 보험설계사를 끌어들이면서다. 박씨는 “'골절 작업(허위로 골절 진단서 발급)을' 해주는 병원이 있다”며 보험설계사들에게 접근했다. 특히 보험설계사 양모(53)씨가 보험사기의 중심 역할을 했다.

양씨는 2017년 1월에 박씨의 소개로 A의원을 찾았다. 역시 “화장실에서 넘어졌다”며 허위로 꼬리뼈 골절 진단을 받은 뒤 보험금 700만원을 타냈다. 양씨는 5대 골절(목·흉추·요추·골반·대퇴골) 때 진단비 명목으로 보험금을 주는 보험 11개에 가입해 둔 상태였다.

양씨는 자기 아들과 딸 등 가족도 보험사기에 동원했다. 심지어 미성년자인 아들까지 동원했는데, 아들 명의로 보험 8개에 가입한 뒤 꼬리뼈 골절을 당했다며 2차례에 걸쳐 보험금 1440만원을 타냈다. 양씨 일가가 받아낸 보험금만 5145만원이다.

보험사기 브로커 박씨 등은 부산 서구의 A영상의학과에서 꼬리뼈 등이 골절됐다며 허위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보험사기 브로커 박씨 등은 부산 서구의 A영상의학과에서 꼬리뼈 등이 골절됐다며 허위진단서를 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셔터스톡

양씨는 동료 보험설계사도 보험사기에 끌어들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겪고 있던 설계사들을 노렸다. 보험설계사 임모(52)씨도 이런 꼬임에 넘어갔다. 아들과 딸, 남편, 오빠와 여동생 등 일가족을 모두 보험사기에 동원했다.

이들 일가족은 2017년 한 해 동안 모두 목욕탕에서 넘어져나 꼬리뼈나 엉치뼈를 다쳤다며 보험금을 청구했다. 실제로는 MRI를 찍지도 않았고 골절진단서만 받았다. 이렇게 일가족이 받아낸 보험금은 총 3500만원이었다.

이들의 보험사기는 상부상조였다. 박씨는 환자들에게 A의원을 소개해 준 대가로 보험사기 1건당 100만원이나 250만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겼다. 의사인 B씨도 진단서 발급 비용과 MRI 촬영 비용 외에 박씨에게 수수료로 건당 20만원가량을 받았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타낸 것 외에 판매실적도 올렸다. 보험설계사들은 지인들에게 “보험에 가입하면 나중에 병원에서 골절 진단을 받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며 보험에 가입시켰다. 보험료를 대납해주고 이후 보험사기가 성공하면 보험료를 정산받기도 했다. 양씨만 하더라도 보험사로부터 판매수당 600만~800만원가량을 받아냈다고 한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험설계사-의사-환자'로 엮인 보험사기는 2018년 4월까지 이어졌다. 이들이 보험사로부터 받아 챙긴 돈만 3억8000만원가량이다. 보험을 과다하게 많이 든 가입자로부터 꼬리뼈 골절 청구가 이어진 걸 수상하게 여긴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에 꼬리가 잡혔다. 보험 가입 현황 등을 조사해보니 양씨를 중심으로 보험 가입이 이어진 정황도 드러났다.

KB손보 관계자는 “골절 진단에 수가가 비싼 MRI를 주로 사용한 데다, 버스 운전을 한 가입자가 있어 허위 진단서 발급 등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KB손보 SIU는 부산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6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박씨 등의 범행을 확인했다. 병원을 압수수색에 확보한 MRI(자기공명영상촬영) 자료를 통해 골절이 없었다는 점 등을 입증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은 2019년 1월 보험사기와 사기 혐의 등으로 박씨와 양씨에게 각각 징역 2년과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양씨는 1심 재판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임씨도 2019년 7월 징역 8개월 선고받았다. 나머지 설계사 등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의사 B씨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B씨는 보험사기에 대한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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