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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학은 기술 팔아 연 2.4조 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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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이스라엘을 가다 

이스라엘의 전기차용 초고속 충전 배터리 시스템 스타트업 스토어닷 연구원들. 텔아비브 북쪽 헤르츨리야에 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의 전기차용 초고속 충전 배터리 시스템 스타트업 스토어닷 연구원들. 텔아비브 북쪽 헤르츨리야에 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의 북쪽과 맞닿아 있는 해안 도시 헤르츨리야. 최근 들어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인 상장 전 회사) 등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지난 10일 중앙일보가 찾아간 헤르츨리야엔 ‘5분 급속 충전 배터리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스토어닷(StoreDot)’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스웨덴 볼보자동차가 전기차 배터리 개발을 위한 투자를 밝혀 관련 업계의 화제가 된 기업이기도 하다. 스토어닷은 유·무기 화합물을 합성해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충전시간은 기존 휘발유·경유차와 거의 차이가 없는 5분.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에너지 밀도와 가격대는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해 전기차 진화의 장벽인 주행거리와 충전 불안감을 동시에 해결한다.

스토어닷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도론 마이어스도프 박사다. 그는 이스라엘 대표 공과대학인 테크니온 출신의 경영공학 박사다.

마이어스도프 박사는 “스토어닷은 배터리 관련 100개 이상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35명의 박사 연구원이 있어 텔아비브대학 2개 학과의 교수진 연구 역량을 가지고 있다”며 “2024년이면 전기차용 초고속 충전 리튬이온 배터리를 양산하고, 이듬해에는 우리 배터리가 도로 위를 달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삼성 등 글로벌기업 R&D센터만 400개 “국가 자체가 스타트업”

이스라엘 하이파에 들어선 글로벌 기업 R&D센터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하이파에 들어선 글로벌 기업 R&D센터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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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어닷을 나와 텔아비브에서 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여를 달리니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나타났다. 이스라엘 최고 종합 국립대학 히브리대 인근 키리얏 하마다 스트리트 5번지에 위치한 바이오 스타트업 ‘알파타우(AlphaTAU)’를 찾았다. 고형 종양 치료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방사선 의료기기 알파다트(Alpha DaRT)를 만드는 곳이다. 알파 방사선을 이용해 국소 부위에 강력한 고선량 에너지를 방출해 효과를 높이면서도 짧은 반감기로 피폭 위험성을 줄이는 방식이다. 지난해 6월 미국 FDA로부터 피부암 등의 환자 치료를 위한 방사선 암치료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았다. 2015년 창업한 신생기업이지만 지난 2월 기존 상장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으로 미국 나스닥 입성에 성공했다. 알파타우 기술의 시작은 텔아비브대다. 천체물리학과의 이츠하크 캘슨 교수와 같은 의과대 요나 케이사리 교수가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한 사례다.

이스라엘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경상남북도에 불과한 면적에 인구 920만 명을 조금 넘는 소국이지만 인구 1400명당 스타트업 1개로, 세계 1위다. 스토어닷이나 알파타우처럼 혁신기술로 무장해 세계의 이목을 끄는 스타트업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만 30개가 넘는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 수는 98개로,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눈에 띄는 글로벌 대기업 하나 없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3610달러(세계은행, 2020년)에 달하는 이유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세계적 스타트업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대표적 비결 중 하나가 대학과 연구소의 독립화된 기술사업화 조직이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으로 유명한 와이즈만연구소의 예다.

이스라엘 대표 이공계 대학인 테크니온의 T-3, 히브리대의 이쑴, 텔아비브대의 라못 등이 대표적이다. 히브리대 이쑴의 경우, 기술이전을 통해 연 매출 2조4000억원을 창출해낸다. 이들 기술이전 회사의 공통된 특징은 기술사업화 전문가들이 소속 대학·연구소와 독립적으로 기관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스라엘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수명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이스라엘 거점 소장은 “아직까지 파일럿 단계에 머물고 있는 한국 대학과 달리 이스라엘은 대학 기술지주회사가 연구개발된 기술을 상업화 단계까지 이끌어가는 창업 생태계가 잘 안착돼 있다”고 분석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또 다른 비결은 정부기구 ‘혁신청’이다.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을 통해 이스라엘 산업·경제의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게 그 역할이다. 1976년 이스라엘 산업무역부 산하에 만든 차관급 조직 수석과학관실이 모태였다. 2015년에는 이 수석과학관실이 혁신청이란 이름으로 독립했으며, 지난해 소속 부처도 경제부에서 혁신과학기술부로 바뀌었다.

혁신청 의장 겸 수석과학자인 아미 아펠바움은 “이스라엘 혁신청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대학교수들이 연구한 결과의 기술이전과 상업화를 촉진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이제 스타트업 내이션(Start-up Nation)에서 스마트업 내이션(Smart-up Nation)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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