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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87년 그사건, 검수완박 땐 묻힌다” 檢의 경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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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509호에 마련된 고(故) 박종철 열사 영정에 묵념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509호에 마련된 고(故) 박종철 열사 영정에 묵념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무리하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저지하려는 검찰이 연일 대국민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대검찰청은 21일 “검수완박이 되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같은 사건은 묻힐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저질러도 밝혀낼 길이 막힌다는 이야기다.

대검 “검사 부검명령권 없어져 경찰 가혹행위 밝히기 불가능”

대검찰청의 이근수 공판송무부장과 최성필 과학수사부장 등은 21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1차 검찰개혁으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대공 수사권을 포함해 수사권을 독점하게 되면서 경찰권의 비대화가 우려되는데도 견제장치가 전무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수완박이 되면) 검사의 보완 수사권마저 박탈되면서 경찰이 피의자에게 강압수사 등 적법절차 위반을 했는지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검수완박이 되면 검사의 변사체 검시 및 부검 명령권도 사라진다. 이에 대해 대검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같은 경찰의 가혹행위를 밝히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경찰이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인 박종철을 불법 체포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 고문하다 사망하게 한 일이다. 다음 날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이 사망 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고 거짓 발표를 했지만, 당시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형사부 당직이던 안상수 검사가 경찰의 화장 시도를 막고 경찰병원에 있던 시신을 압수해 한양대 병원에서 부검을 지휘했다. 이후 부검의의 증언과 중앙일보 등 언론 보도에 힘입은 검찰의 보완 수사로 고문치사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대검은 또 “만일 국가보안법 피의자가 경찰에서 구속기간 20일을 보내고 검찰로 올 경우 강압수사를 받은 적 있는지 질문조차 할 수 없어, 가혹행위를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난해하고 공소시효 6개월 선거범죄, 검찰 배제하면 부실 처리”

검수완박이 되면 선거범죄 수사에도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선거범죄는 공소시효가 6개월로 매우 짧고 선거법이 다른 나라에서 찾아 보기 어려울 만큼 난해한데, 고도의 법률적 전문성과 공소 유지 경험이 있는 검사가 책임지고 수사한 뒤 공소유지를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검은 “검찰의 손발을 묶는다면 검찰과 경찰 간 사건이 오가는 와중에 시효완성 또는 부실처리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검은 “검수완박이 되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김용균) 사망사건과 같은 산업재해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경찰과 노동청은 1차 수사를 한 뒤 원청·하청 대표이사들에 대해 “사고방지에 대한 주의 의무가 없다”라며 무혐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진행한 뒤 대표이사 전원을 재판에 넘겼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중대재해 사건 실무자 간담회에서 “안전사고 발생 시 검사가 철저한 공소유지를 위한 증거수집을 위해 초기에 현장검증에 참여하는 등 수사와 공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검찰, 경찰, 노동청 등 유관기관들이 함께 공동대처하는 유기적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 있다.

이근수 대검 공판송무부장 등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이근수 대검 공판송무부장 등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검찰 “비대해지는 경찰 개혁은 왜 안 하나”

대검은 “경찰의 비대화를 막기 위한 자치경찰제,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 등 경찰개혁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다”라고도 비판했다.

대검 관계자는 “검수완박 법안에 따른 폐해의 본질은 검찰 수사권 박탈로 우리 국민이 형사사법 절차에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 즉 범죄로부터 보호 받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법률 전문가이자 준 사법 기관인 검사에게 한 번 더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법안의 명분이 무엇인지, 억울한 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 앞에 설명을 해달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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