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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탈당까지, 거대 여당 검수완박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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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4월 처리를 위해 친여 성향의 무소속 의원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치하는 ‘꼼수 사·보임(辭補任)’을 썼던 더불어민주당이 20일엔 소속 국회의원을 ‘위장 탈당’시켰다. 무리한 입법을 위해 절차를 중시하는 국회법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의장실에 국회 법사위 소속 민형배(광주 광산을) 의원의 탈당 사실을 통보했다. 뒤이어 국회 법사위에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 회부를 신청했다.

상임위 안건조정위란 첨예한 이견을 조율하기 위해 구성하는 6인 위원회인데, 제1당 소속 위원 3명과 그 외 의원 3명으로 구성된다. 당초 법사위는 민주당 12명, 국민의힘 6명이었다. 법사위 위원수로는 민주당이 두 배 많았지만, 안건조정위를 꾸리게 되면 규정상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안건조정위에 올라온 사안은 3분의 2(4명)의 찬성이 없으면 최장 90일까지 논의하게 된다.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선 다수결로 밀어붙이지 말고 소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검수완박’ 법안이 법사위에 올라와도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를 통해 시간을 최대한 끌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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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7일 법사위원 사임(맡고 있던 자리를 그만둠)과 보임(어떤 직책을 맡음)을 통해 법사위 구성 자체를 바꿔버렸다. 즉, 민주당 법사위원이던 박성준 의원을 그만두게 하면서 그 빈자리에 기재위 소속이던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배치했다. 양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지난해 보좌관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자 자진 탈당했다.

이처럼 법사위 구성이 민주당 11, 국민의힘 6, 비교섭단체(무소속) 1로 되면서 법사위 안건조정위 구성도 민주당 3, 국민의힘 2, 무소속 1로 변경됐다. 민주당이 꼼수 사·보임을 통해 안건조정위 4대 2 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 와중에 돌발 변수가 불거졌다. 민주당 편을 들 것으로 예상됐던 양 의원이 19일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서다. 양 의원이 이탈하게 되면 법사위 안건조정위 4대 2 구도는 무너지고, 이는 곧 ‘윤석열 정부 출범 전 검수완박 입법 완료’라는 민주당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다.

이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20일 국회법상 숙의 절차를 무산시키는 방법을 총동원했다. 일단 양 의원을 법사위에서 강제로 배제하려 했다.

양향자 “의원 탈당 발상에 경악” 정의당 “의회민주주의 테러”

박주민 법제사법위원회 제1 소위원장(왼쪽)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법안심사 회의를 앞두고 복도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주민 법제사법위원회 제1 소위원장(왼쪽)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법안심사 회의를 앞두고 복도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 오전 박병석 국회의장 측에 “양 의원 대신 다른 의원을 법사위에 넣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하지만 박 의장 측이 ‘(상임위원은) 임시회 회기 중에 개선(교체)될 수 없다’는 국회법(제48조 6항)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그러자 두 번째 방법으로 등장한 게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민형배) 위장 탈당이었다. 이렇게 되면 법사위 소속 비교섭단체(무소속) 의원은 양향자·민형배 2명이 된다. 안건조정위원 선임 권한은 상임위원장에게 있다. 현재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소속 박광온 의원이다. 따라서 박 위원장이 민 의원을 안건조정위원으로 선임하면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3, 국민의힘 2, 무소속 1이라는 4대 2 구도가 다시 만들어지게 된다. 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자신의 탈당에 대해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역할에 대비하려는 뜻”이라고 밝혔다.

판이 짜이자 민주당은 곧바로 안건조정위를 신청하면서 공세에 나섰다. 박광온 위원장은 양당에 “내일(21일) 오전 10시까지 조정위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위원장 직권으로 안건조정위를 구성할 수 있고, 당일 의결도 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이번 주 법사위 통과, 다음 주 본회의 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법사위 구성 어떻게 바뀌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법사위 구성 어떻게 바뀌었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앞서 민주당은 ‘양향자 사·보임’ 외에도 법사위원 사·보임을 여러 차례 하면서 변수에 대비했다. 특히 지난 18일에는 법사위에 김종민 의원 대신 김진표(1947년생) 의원을 교체 투입했다. 김진표 의원을 막판 투입한 배경에는 안건조정위 구성 시 최연장자가 위원장을 맡는 관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소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고 안건조정위원회까지 무력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입법 독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박 의장을 향해 “상임위 정수에 맞춰 민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교체)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이상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민 의원 탈당은)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대로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헛된 망상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양향자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내가 사랑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민주당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정의당도 “민형배 탈당은 대국회 민주주의 테러”(장태수 대변인)라고 비판했다.

한편 박병석 의장은 23일로 예정했던 방미 일정을 이날 보류했다. 따라서 향후 검수완박 법안의 본회의 통과엔 박 의장의 ‘의중’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현재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상황이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려면 국회 회기를 2~3일 단위로 짧게 쪼개야 하는데 회기 변경은 국회의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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