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섹시는 … 노출이 아니다, 풍기는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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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프랑스와 함께 세계 패션을 이끌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이탈리아.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고향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구찌'는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다. 창립자인 구치오 구찌가 1921년 피렌체에 가죽 제품 상점을 열면서 시작된 구찌의 역사는 올해로 85주년을 맞았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단독 매장을 홍콩에 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 지아니니(35)를 6일 현지에서 만났다.

스타일은 옷이 아니라 개성이다

"섹시함은 더 이상 파티를 가기 위해 화려하게 차려입고 리무진에서 내리는 그런 여성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섹시한 여성이란 파티 걸이 아니라 직장 여성과 엄마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여성은 자신의 업적이나 지식으로 존경받기를 원하는 시대다. 노출을 통한 의도적인 표현보다는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지적인 섹시함이다."

지아니니는 자기 자신도 너무 노출이 많은 의상을 즐기지 않는다면서 현대 여성의 섹시함은 결코 화려한 외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구찌의 액세서리 라인은 물론이고, 여성복과 남성복 라인 등 전 라인의 디자인 디렉팅을 맡은 지아니니. 그는 1994년부터 10년간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로 쇠퇴해 가던 구찌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으로 유명한 미국 출신의 전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와의 차별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포드는 간결하면서도 섹시한 여성미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스타일이란 결코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이 자신의 개성을 인식하고 이런 개성을 어떤 태도를 가지고 표현하느냐다."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지만 역시나 그 또한 자신감을 스타일링의 최고 덕목으로 꼽은 것이다. 남성들이 보기에 '예쁜' 여성보다는 여성이 보기에 '멋진'여성상을 추구하는 여성 디자이너 특유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2002년부터 구찌의 핸드백 디자인을 총괄했던 그가 2004년 여성복 수석을 시작으로 올해 전체 디자인 수석을 맡은 이후로 구찌는 확실히 이전보다 귀여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귀여운 분위기의 의상은 확실히 여성 고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짙다.

아시아, 왜 서양을 모방하나

지아니니는 이번이 첫 아시아 방문이다. 최근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 아시아 패션 시장에서 그가 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서양 여성들을 모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시아 여성은 아주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있다. 아시아는 아시아 특유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있는 만큼 그들만의 색깔과 특징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서양 여성을 모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동양의 문화에는 내가 추구하는 빈티지와 모던함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가 녹아든 오래된 느낌과 함께 편안함을 추구하는 빈티지라는 용어와 현대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모던함. 그는 인터뷰 내내 아시아 여성에게서 이런 소양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션이란 문화와 시대의 여성상을 반영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무조건적인 서양 여성 따라잡기는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패션은 물론이고 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럭셔리를 외쳐대고 있는 지금 지아니니는 '정제된 럭셔리'의 개념을 주장했다. "정제된 럭셔리란 단순히 비싸고 화려한 것만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 장인 정신이 서로 연결돼 풍부한 디자인과 디테일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말이지만 맹목적인 럭셔리 추종파들에겐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구찌, 다시 이탈리아 색깔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는 구찌. 완벽한 장인 정신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제품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슬로건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구찌의 슬로건 중엔 바로 'Made in Italy'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패션에 관한 한 엄청난 자부심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람들. 포드가 수석을 맡고 있는 동안 구찌는 잠시 이탈리아를 떠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70년대에 로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구찌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시 내 어머니와 할머니 모두 구찌라는 브랜드에 넋이 나가 있었다. 구찌의 근본은 이탈리아다."

지아니니가 수석을 맡으면서 그동안 밀라노와 런던 등으로 나뉘어 있던 디자인 본부는 구찌의 고향인 피렌체로 옮겨 왔다. 그만큼 이탈리아 패션의 색깔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다. 그의 의도는 최근 디자인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구찌의 전통적인 문양과 디자인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온통 블랙 의상을 입고 인터뷰에 응한 지아니니. 그는 블랙 의상을 아주 좋아한다고 털어놓는다. "블랙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색이다. 특히 이렇게 바쁜 아침 시간엔 여성들에게 가장 유리한 색이 아닐까?" 역시 여성을 이해하는 디자이너의 발언이다.

홍콩=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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