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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연'자도 언급 안했다"...정호영 둘러싼 또 다른 논란

중앙일보

입력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질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두 자녀를 둘러싼 논란도 있지만, 전문성 미흡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보건복지부는 17일 정 후보자 기자회견용 문답 자료 19페이지에 이례적으로 이런 걸 넣었다.

정호영 복지장관 후보자 전문성도 논란

문: 연금 등 복지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 아닌지?

답: 의료현장 30년 경험과 보건의료 분야 전문성을 살려 코로나19 대응과 일상회복을 위한 방역·의료 체계 개선 완수를 위해 내정된 것으로 이해함. 보건의료 외 복지, 인구 관련 정책 사안에 대해 복지부 실무자와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겠음.

윤석열 당선인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요청사유서는 정 후보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경북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기획조정실장·진료처장·병원장 등을 지냈고, 의료인공지능센터를 열었으며 전국 최초로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의료지원을 했고, 대한병원협회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고 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감염병 대비 방역 및 보건의료체계 재정비, 백신·치료제 개발,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 가능한 맞춤형 복지 실현 등으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비전을 제시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자료를 종합하면 정 후보자의 강점은 코로나19 관련 전문성인 것처럼 보인다. 2020년 초 대구에서 유행한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토대로 포스트 코로나 체계 정비 적임자라는 것이다. 의료정보화 관련 전문성도 있어 보인다. 다만 청문회 관련 서류나 복지부 자료에는 새 정부의 시급한 과제인 연금개혁,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 등의 사회 위기 해소 등은 언급돼 있지 않다.

보건복지의 영역이 워낙 넓어 다 잘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정 후보자의 전문성이 의료, 특히 대형병원 의료에 국한돼 있어 질병 예방·돌봄, 건강보험 개선, 1차 의료 강화 등의 보건 분야에는 닿지 않는 듯하다. 저소득층·장애인·노인·아동 등의 취약계층 복지는 말할 것 없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 후보자가) 보건이나 연금 분야에서 활동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전문성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제도나 정책을 다룰 수 있는 경험이나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윤 당선인과 개인 인연으로 지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도 "보건복지 행정을 책임질 분이라면 그간 활동이나 능력, 철학, 정책 방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어 적임자인지 의문이 든다"며 "윤 당선인 캠프에서 보건 분야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도 아니다. 새 정부의 첫 보건복지부 장관의 적임자인지 국민들이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병원장이 담당하는 코로나19와 국가가 막는 코로나19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데, 현행 의료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다. 여기에 맞춰 보건의료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데, (정 후보자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명됐을 때 갸우뚱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협회 상임이사를 했다고 하지만 건강보험, 보건의료정책, 의무 등의 주요 업무를 맡은 게 아니었다"며 "서울대병원 비상임이사 경력도 의료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당면과제 중 최우선 순위 과제가 연금개혁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장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일보 리셋코리아 연금분과 위원들은 비판적 의견을 냈다. 윤석명 분과위원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개혁을 다루려면 제도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파트를 조율해야 하는데, (정 후보자가)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새 정부가 대선 공약 단계에서 연금개혁 청사진을 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당시 윤 후보자의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에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지명에서 그런 경향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 실장은 "(정 후보자가) 지명됐을 때 적어도 연금개혁 관점에서는 좀 실망스러운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원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 후보자의) 전공 분야가 의료 쪽이다. 사회복지는 아니니까 아무래도 연금개혁과 관련해 평소에 고민했을지 의문이 든다"며 "어차피 코로나 상황은 위드 코로나로 자연스레 가게 될 것이어서 복지 분야를 총괄하는 사람이 장관 적임자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정 후보자는) 연금과 무관한 사람이다. 코로나 상황이다 보니 할 수 없이 병원 의료계 인사를 임명한 것 같다"며 "보건과 복지가 기형적으로 붙어있으니까 장관 후보가 이렇게 되는 것 같다(한 분야만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지금 시점에는 본인이 자문자답(스스로 묻고 답함)해야 한다. '나는 공인 의식이 있는가. 공인으로서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보다 공(公)이 먼저인가를 묻고 모두 '예스'라면 문제없다"고 말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건과 복지가 분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극복이 국민 피부에 와 닿는 시급한 사안이다 보니 보건 전문가를 지명한 것 같은데 이게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며 "만약 연금전문가가 지명됐으면 비판이 더 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금개혁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 어젠다이다. 대통령이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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