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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맨홀 속 배선작업, 밤엔 훈련…프로 첫 우승컵 든 ‘집념의 볼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이상일이 지난 14일 수원 빅볼 볼링경기장에서 열린 DSD삼호컵 프로볼링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공을 굴리고 있다. 이상일은 2022시즌 프로볼링 개막전인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사진 PBA]

이상일이 지난 14일 수원 빅볼 볼링경기장에서 열린 DSD삼호컵 프로볼링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공을 굴리고 있다. 이상일은 2022시즌 프로볼링 개막전인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사진 PBA]

“희망이 없어서 거의 포기 상태였어요. 그러다 기적이 일어난 거죠.”

오랜 방황 끝에 프로 첫 우승을 차지한 이상일(31·팀 명인공조)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상일은 지난 14일 경기도 수원 빅볼 볼링경기장에서 열린 2022시즌 프로볼링 개막전인 DSD삼호컵 프로볼링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문경호(미스틱)를 213-199로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프로 3년 차인 이상일은 데뷔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장식했다. 우승 상금은 2500만원.

이상일은 다섯 번째 대회 출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프로 선수가 첫 우승을 하기까진 보통 3~4년이 걸린다. 평균 40~50개 대회를 치른 후에야 첫 우승을 경험하는 셈이다. 볼링계는 이상일의 우승을 두고 ‘초고속’이라고 부른다. 우승 후 만난 이상일은 “얼떨떨하다. 상위권에 올라보자는 생각뿐이었는데 운이 많이 따른 것 같다”며 “볼링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상일은 최근 볼링을 그만둘 뻔했다. 그는 2019년 프로 테스트에서 합격했는데, 이듬해 시작되는 데뷔 시즌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2020시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수입이 크게 줄어든 이상일은 충북 청주 한 볼링장에서 직원(코치)으로 근무했다. 퇴근 후엔 같은 장소에서 매일 두세 시간씩 훈련했다. 그러나 영업 시간·인원 제한 등으로 매출이 크게 줄자 직원들 월급도 삭감됐다. 버티고 버티던 이상일은 결국 지난해 10월 볼링장 근무를 그만뒀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새로운 직업이 필요했다. 볼링은 부업으로 삼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상일은 한 통신업체에 취직했다. 통신 케이블·배선 등을 설치·매설하는 일이었다. 전봇대에 오르고, 맨홀 안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일이 고돼 퇴근 후엔 몸이 녹초가 됐다. 이상일은 “볼링을 포기할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 두 시간씩은 꼭 훈련했다. 그가 흘린 땀방울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이상일은 “우승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부업이었던 볼링을 다시 주업으로 삼을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상일은 2011년 경북대 볼링부 2학년 때 볼링을 포기한 적이 있다. 오른쪽 팔꿈치와 어깨 수술을 연달아 받으면서다. 재활 후 복귀까지 1년 이상 걸린다는 의사 말에 뒤도 안 보고 볼링을 떠났다.

이상일은 중학생 시절 소문난 말썽꾸러기였다. 싸움도 했고, 사고도 쳤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관심을 운동으로 돌리기 위해 볼링부에 입부시켰다. 이상일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공을 굴렸다”며 “운동을 관둘 핑계를 찾다가 ‘이참에 지긋지긋한 볼링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참 동안 볼링공은 쳐다보지도 않던 이상일은 2018년 지인과 우연히 볼링장에 가게 됐는데, 볼링에 재미를 느꼈다. 그는 “억지로 할 땐 몰랐던 볼링의 매력을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7년 방황 끝에 다시 공을 잡은 그는 거침없었다. 남동생 이상민(28·핑거하우스)과 밤낮 가리지 않고 훈련해 1년 만에 나란히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이상일은 “부모님이 우승 소식에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 그동안 속 많이 썩였는데 볼링으로 효도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또 우승하는 게 목표다. 우리 형제가 결승에서 맞붙는 꿈도 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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